교수 · 파워트위터리안 · 행복전도사 · 영혼의 멘토 · 청춘의 도반…고요하지만 감동적인 그의 佛法·행복 · 인생이야기

현재는 없고 과정만 있던 고등학교 재학시절…우여곡절끝 미국에 처음 발디뎠을 땐 감옥과도 같았던 공장에서 드디어 탈출했다는 느낌만…

버클리대 시절 캠퍼스에서 접한 佛法과 지인의 급작스러운 죽음…회오와 삶의 무상함을 느끼며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기싫다고 생각

1997년 한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노스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美 유학생활중 터진 외환위기때 생활비로 흔들리던 날 잡아주기도

이듬해 해인사에서 사미계 받으며 조계종 승려로…성철스님·법정스님 같은큰 스님 길을 따르기보다는 무겁고 거창하지 않은 이대로의 삶에 만족

"승복을 입고 가장 큰 변화라면 행복이라는것이 어떤 목표를 이룬 후에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주변을 살피면서 조건 없이 나눠줄 때 나와 같이한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이죠"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이자 이 시대 청춘의 멘토로 급부상한 혜민 스님의 은사인 휘광 스님은 그런 점에서 보면 제자 복(?)이 없는 편이다. 주말이나 돼야 3시간 걸려 달려와 고작 하룻밤 지내고 돌아가니 말이다. 방학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으로 돌아가 제 일이 바쁘니 얼굴을 봐야 스승 노릇이라도 하지, 되레 나이든 자식 뒷바라지 하는 격이다. 갑작스레 캐나다에 가야 할 혜민 스님을 위해 11시간 장시간 운전대를 번갈아 잡은 적도 있다. 스승을 보면 제자가 보인다.

‘한국 승려 최초의 미국 대학교수’ ‘하버드대ㆍ프린스턴대 출신 스님’으로 요즘 혜민 스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트윗 팔로어 수가 열흘 전 33만명이던 게 그새 47만명으로 늘었다. 매체에 한 번 얼굴을 내밀 때마다 10만명씩 팔로어가 늘어난다. 덩달아 책도 춤을 춘다. 조만간 200만부를 넘어설 참이다.

지난 2월 1일 아침 6시(미국 현지시간), 매사추세츠 주 햄프셔대 교수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혜민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오래 울린 뒤 스님이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런 아침 전화에 스님은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

스님은 “한국에 계신 아버님이 요즘 많이 아프셔서” 걱정하던 차였다고 했다. 속가를 떠난 승려지만 부모님을 향한 애틋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스님이 되면 가족과 생이별한다는 생각은 고릿적 얘기다. 혜민 스님은 “가끔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한국에 가면 저녁 공양도 같이한다”고 했다.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해 12월 12일, 겨울방학을 맞은 스님이 귀국했다. 방송과 강연 스케줄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스님이 사라졌다. 그날은 다름 아닌 스님의 생일.

어머니가 생일만큼은 집에서 미역국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 속가를 찾은 것이다. 생일상을 받고 4개의 긴 촛불을 껐다. 마흔의 아들은 마음이 울컥했다. 스님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사랑이 많은데 승려이다 보니 억눌렸던 부분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먹이는 미역국은 사랑이고 아픔이고 안쓰러움이다. 출가한 아들이지만 여전히 배냇아기가 아니겠는가.

출가를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보다 구도의 길을 가는 아들을 말없이 격려했다. 그는 부모님이 적극 반대했다면 출가를 주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자랑스러워 하세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고요.”

조용히 눈바라기만 하는 어머니지만 그 어머니에게도 섭섭한 마음 한 자락이 있다. 승려가 된다고 처음 절로 들어가던 날, 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썩썩 걸어 들어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스님, 멈추면 무엇이 보입니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묻는 말이다. 이들의 질문에는 “바쁜 질주의 생활에서 내려앉아 멈춰 자신을 돌아보라는 건가”라는 의문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혜민 스님이 말하려는 건 사실 무얼 보라는 것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뭘 보기 위해 멈추는 게 아니라 그냥 멈춤이다. 가만히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뭔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삶의 지혜는 바로 멈춤에서 온정(溫井)처럼 조용히 차오른다는 얘기겠다.

“삶의 지혜란 굳이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편안한 멈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채우려고만 하는데 비움 안에 온전함이 있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돼요. 자꾸 이루려고 해서 행복을 얻으려 하는데 비어 있다는 게 지혜예요. 무엇을 잘 하려면 지혜가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디어가 생각이 많다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생각이 많으면 결정도 못해요. 고요해지면 지혜가 알아서 길을 찾아냅니다.”

그는 온전한 ‘나’가 마음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혜민 스님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다 생긴 모국어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그의 혀는 기갈들린 듯 모국어를 찾았다. 우리말이 너무 사무치게 그리워 트위터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 일상 속에서 만난 깨달음들을 올리며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런 글들에 다른 이들이 위안을 받았다며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때 한 마디 말이 타인에게 용기와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알게 된다. 그 후 그의 트위터와 메일에는 살면서 느끼는 고민에 대한 상담이 줄을 이었다. “고민의 내용은 다양해요. 집안 문제, 고부간의 갈등, 상사와의 문제, 대학 삼수하는 이의 좌절, 암환자와 아프고 힘든 이들이죠. 제가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 기대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잘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게 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거거든요. 누군가 고민을 같이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위로가 되는 거죠.”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젊은날의 실망·좌절 그리고 첫사랑

그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청년들의 진로 고민, 등록금 문제, 실업 문제,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으로 힘들어 하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특히 우리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대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게 A학점을 받아서 좋은 데 취직할려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걸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죽자 사자 공부하잖아요. 모든 게 과정일 뿐이니 현재는 없는 거죠.”

그도 고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80년대 말, 공부를 꽤 잘하는 축에 들었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일반고를 선택했다. 외고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반 배정을 앞두고 또 한 번 실망스런 선택을 하게 된다. 제2 외국어 선택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믿고 불어반을 든 게 알고 보니 실은 성적이 가장 낮은 아이들이 모인 반이었다. “나는 선생님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을 뿐인데, 결과는 출발선부터 훨씬 뒤처진 느낌이었고 왠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그런 실망은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이어졌다. “아침 7시30분까지 등교해서 밤 10시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독서실로 향하면서, 내가 지금 암기하고 있는 이 많은 지식이 내 삶에 어떤 의미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만큼 깨달음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다. 그는 숨막히는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 벗어날 결심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땐 감옥과도 같았던 공장에서 드디어 탈출했다는 느낌뿐이었다고 그의 첫 책 ‘젊은 날의 깨달음’에 썼다.

그런 감옥 같은 고교 시절에도 꿈 같은 시간이 있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고 새로운 깨달음에 가슴 두근거리던 때, 그는 일곱살 연상의 미국 여선교사를 만났다. 그녀는 스님과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녀와는 공통관심사가 많았다. 엔야의 음악을 좋아하는 거나 영화감독 뤽 베송, 레미제라블 같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게 같았다. 또 음악 이야기, 철학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면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준비했고, 그녀는 직접 구운 쿠키나 파이를 선물로 줬다. 그때 그는 단순한 설렘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첫사랑의 끝은 예고돼 있었다. 그녀는 반년 후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오랜 연인도 있었다. 헤어짐은 ‘영혼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아픔이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종교학으로 바꿀 무렵, 그는 첫사랑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결혼 소식을 알리는 편지였다. 그는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줄 자신이 없었고 두려웠다. 대신 작은 선물을 보냈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대한 건 그로부터 2년 후. 대학 친구들과 함께 떠난 졸업 여행길에 그녀가 사는 지역에 들러 그녀의 남편과 함께 만났다. 그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버클리대학서 ‘佛法’을 만나다

그가 불법을 만나게 된 계기는 우연이지만 불가의 눈으로 보면 오랜 연으로 설명된다. 버클리대 시절, 그는 캠퍼스에서 한 티베트 승려를 만나게 된다. 빨간 장삼에 눈길이 갔다. 스님이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지 물어보면서 대화가 길어졌다. 결국 스님이 묵고 있던 아파트로 자리를 옮겨 긴 대화를 나누며 불교 기본교리와 명상을 배웠다. 그 후 그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스님이 계신 아파트로 향했고 여러 가르침을 얻었다. 스님은 그가 불교와 인연이 깊은 것 같다며 꼭 종교학을 공부해 보라 권했다. 그 분이 린포체 스님이다.

어떤 큰 일이 돼 가는 데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의 출가를 종용하듯 그의 마음을 흔드는 몇가지 일이 이어졌다. 그중 하나가 학교에서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지인의 죽음이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이가 한밤 중 큰 트럭과의 충돌로 하루 아침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지인의 죽음 앞에 그는 더 잘해 주지 못한 회오와 함께 삶의 무상함에 가슴이 허했다. 그는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기 싫었다.

1997년, 또 한 번 그의 영혼을 울리는 일이 생긴다. 하버드대 석사 과정 중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어느 노스님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스님을 처음 뵌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었는지 지금도 그에겐 미스터리다. 그는 아마도 전생부터 알고 뵙고 싶어 했던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따름이다.

하버드대로 돌아온 그해 가을, 뜻하지 않았던 역경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져 한국 속가에서 보내주던 몇푼의 생활비가 끊긴 것이다. 등록금 면제와 약간의 생활비를 학교로부터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던 형편이었다. 정말 힘들다고 느끼던 어느날,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름에 잠깐 뵈었던 노스님이었다. 필요한 생활비를 보내주시겠다는 전화였다. 그는 또 한 번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 울었다.

이듬해 그는 지금의 은사인 휘광 스님을 모시고 출가한다. 그는 “승복을 입게 된 후 가장 큰 변화라면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목표를 이룬 후에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주변을 살피면서 조건 없이 나눠 줄 때 행복이 바로 나와 같이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아침은 조용하다. 아침명상으로 맑은 의식과 함께 깊은 고요에 든다.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 무엇을 성취한 데서 오는 행복과 다른 존재 자체가 가져다 주는 고요한 행복이다.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5시. 한 시간 가량 그렇게 좌선과 독경을 하고 일주일 두 번 학교체육관에 가 운동을 즐긴다. 주 종목은 요가와 달리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불교심리, 불교치유, 종교철학 등이다. 강의 시간은 1시간20분이지만 40분만 강의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다.

그의 생활은 미국과 한국이 판이하다. 한국에 오면 여기저기 꺼둘린다. 와 달라는 곳, 만나 달라는 데가 많다보니 바쁘고 부산하다. 그래도 그는 그런 만남이 즐겁다. 반면 미국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의 삶은 그 자체가 도 닦는 거나 다름없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런데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그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끝없는 깨달음의 길

사람들은 혜민 스님의 미소를 ’살인 미소’라고 말한다. 스님은 웃음이 많고 맑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기에 자연스럽다. 혜민 스님이 강의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주위에서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 같은 큰스님이 되시라고 덕담을 주시는데 “저는 혜민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법정 스님이나 성철 스님처럼 산속에서 기거하며 수행을 하는 건 그에게 맞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여행하길 좋아하고 자연과 더불어 자전거 타기, 팝송, 재즈도 즐긴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 뉴욕에 가면 종종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뉴욕필하모닉 연주를 보러 간다. 대학원 때부터 싼 티켓 구해서 보는 게 버릇이 된 나름의 사치다. 좋아하는 연예인, 스포츠 선수도 많다. 베스트셀러도 즐겨 읽는다. ‘남자의 물건’으로 잘 알려진 김정운 명지대 교수의 팬이다. 또 소설가 은희경 씨와는 트친 사이. 이외수 씨를 빼놓을 수 없다. 종합하자면 그는 지금 40대 초반 여느 대한민국 남자와 다름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요소가 바로 사람들이 혜민스님에 열광하는 이유다. 무겁고 거창하지 않고 동네 스님처럼 고민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찾아가도 좋을 그런 평범한 매력이다.

그 역시 힘들고 고민이 있을 때, 수행이 막힐 때마다 찾는 큰 스님이 있다. 수불 스님, 미산 스님이 혜민 스님의 멘토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존중하고 아낀다. 제자는 자신 때문에 스승께 누가 될까 무척 삼가고 조심한다. 스승은 제자의 일에 대해 말 한 마디 할 때도 제자의 허락을 받는다.

혜민 스님은 삼십대가 된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그건 우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라”고 그는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권한다. 행복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혜민(승려/교수) 덕망이 높은 스님들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게 마련이다. 큰 스님은 제자들의 수행과정을 눈여겨보다 자신을 이을 승려로 상좌 몇을 점찍곤 한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훌륭한 제자가 나는 지라 좀 더 가까이 모시려는 제자들의 고무신이 닳게 마련이다. 스승과 제자가 단번에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혜민 스님과 은사인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이다. 휘광 스님은 종종 혜민 스님에게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며, 혜민 스님 상좌 한 명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