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아시안게임 2회 연속 3관왕 달성으로 친숙한 광저우는 알고 보면 2000년 역사를 지닌 동양 최고(最古) 무역도시다. 중원에선 ‘온몸에 문신을 한 이상한 사람들’이라며 오랑캐 취급을 했지만 자력으로 부를 축적하며 보란듯이 살았다. 19세기 무역량은 상하이의 3배였다.
광저우, 선전이 있는 광둥 성은 정치 경제 체체의 변화무쌍함으로도 눈길을 끈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시험대인 ‘광둥코뮌’(1927년)의 중심무대, 중국 사회주의 본고향이다.
1979~1980년엔 중국 자본주의 도입의 진원지가 된다. 중앙정부로부터 경제특구ㆍ개방도시 지정이라는 2000년 만의 첫 선물을 받고는 뼛속까지 일거에 바뀐 것이다. 이후 광둥 성은 중국 내 지역총생산(GRDP)에서 부자도시 1위 자리를 지켰다.
‘확’ 바뀌는 이곳 역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광둥 성의 발전철학은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텅룽환냐오ㆍ騰籠換鳥)’다. 화끈하다. 5년 전, 2차산업 중심에서 3차산업으로 바꿀 계획을 세워 기업 7만여개를 퇴출시키고 3만여개를 새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나빴다. 27일 집계된 작년 GRDP에서 2위 장쑤 성과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던 것이다.
난징, 쑤저우, 우시를 거느린 장쑤 성은 기업 용지 무료 제공, 면세 등 유치 전략을 꾸준히 구사했다. 한국 투자가 30%나 늘었고, 광둥 성이 목표로 삼던 3차산업마저 성장률 1위를 거머쥐었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비롯한 제조업ㆍ서비스업ㆍ관광ㆍ할리우드식 문화산업 등 균형적 산업생태계 기반 위에 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광둥의 정체와 장쑤의 발전을 보면서 ‘세상에 일거에 싹 바뀌는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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