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만명당 평균 자살률 31.7명, 60세 이상에서는 무려 91.4명 -노인 자살은 ‘침묵의 자살(silent suicide)’…무관심 속 가파르게 증가세 -경제적 빈곤→건강 악화→우울증→자살로 이어지는 고리 -“다른 연령대에 비해 자살 원인 명확…준비 안된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셈”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웹툰 작가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70대 노인 군봉은 아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평생 자식을 키우며 여러 고통을 견뎌왔지만 아내가 치매에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되고,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연탄불을 피우고 아내와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이런 비극적인 스토리를 영화 속에서만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현실은 더욱 비극적이다. 지난 1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수십년간 홀로 한센병을 앓아온 60대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선 9일에는 대구시 수성구에서 64세 할머니가 목매 숨진채 발견됐다. 김 할머니는 홀로 살아왔으며 최근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균 자살률 보다 3배 이상 높은 노인 자살률=인생의 마지막 관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60세 이상 노인 자살자는 91.4명이다. 평균 자살률의 3배를 웃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급증세다. 60세 이상 노인인구의 10만명당 자살률은 2000년 39.07명으로 지금의 40%에 그쳤다. 10년 만에 2.3배 늘어난 것이다. 특히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충격적이다. 2011년 자살을 택한 80세 이상 노인은 100명이 넘었다. 80~89세는 2000년 53.4명에서 2011년 127.95명으로, 90세 이상은 같은 기간 35.4명에서 129.1명으로 각각 뛰었다.
▶빈곤→건강 악화→우울증…결국 자살까지=노인 자살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원인이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제적 빈곤과 신체적ㆍ정신적 질환으로 인한 신변비관이 우울증으로 번져 자살에 이르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평생을 힘들게 일했지만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대부분의 노인들이 경제적 빈곤에 처한다. 60세 이상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생계를 이어갈 방법도 마땅치 않다. 설상가상 노화에 따른 질병까지 얻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결국 ‘더 이상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우울증에 빠지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 충동 원인 가운데에는 건강 문제가 39.8%, 경제적 어려움이 35.1%를 차지하며 외로움(12.9%), 가정 불화(4.3%)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잉여 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생산 지향적인 가치가 중요시 되다보니 상대적으로 노동력, 생산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리없이 늘어나는 ‘침묵의 자살(silent suicide)’= 홀로 사는 노인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사전 징후가 나타나지만 이를 사회가 인지하지 못해 자살을 막지 못하는 것도 노인 자살 급증의 원인 중 하나다. 현재 국내에 최저 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독거노인은 약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기초생활수급 등 국가 지원을 받는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젊은이들의 자살은 ‘도와달라는 비명(cry for help)’으로 해석되는 데 반해 노인 자살은 ‘침묵의 자살(silent suicide)’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김도윤 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 자살예방팀장은 “경제적 빈곤, 건강 악화, 고독감 등이 이어지면 마지막 단계는 고립이다. 만성 질환 등으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홀로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 우울증 등이 악화될 수 있다. 노인을 홀로 방치한다는 것 자체가 자살 위험을 경고하는 일종의 신호”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