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끝나고 다음 영화 들어갈 때까지의 시간들이 미치도록 괴롭다. 일이 끊긴 동안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영화를 그만두게 되거나, 다음 영화에서도 똑같이 착취당할까 무서워서, 결국 군말없이 그들이 제시하는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겠지. 악순환이다.” “영화 그만두고 취업하려고 발버둥친 지 오개월, 아직도 쉽지 않다.” 지난해부터 영화인들 사이에 화제가 됐던 현장 스태프의 트위터 공동계정 ‘촬영장 옆 대나무 숲’에 올랐던 글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낸 ‘이슈페이퍼’(2012년 12월 31일자)에 게재된 ‘오늘, 한국영화의 빛과 그림자’에선 지난해 한국영화를 “갑자기 폭죽이 터지면서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샴페인이라도 나누어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서도 “어딘가 어리둥절하고 어색하다. 특히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나 제작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고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몇 년간 영화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제작비 절감인데, 문제는 이것이 나이 든 여자가 살을 뺀 것 같은 모양새로 진행됐다는 점”이라며 “빠져야 할 부분은 적게 빠지고, 안 빠져도 될 부분은 많이 빠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쉽게 손댄 것이 바로 스태프의 임금”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도 ‘촬영장 옆 대나무숲’의 글 하나를 인용했다. “제작 중 모 영화 주연배우 개런티 6억7천. 같은 현장에서 뛰는 어느 막내 스태프 페이 320만원. 4달 프리+현장. 상업영화임”이라는 것이었다. 4개월에 320만원이면 월급으로는 80만원이다. ‘88만원 세대’의 초상은 영화 현장에도 걸려있다. 투자사 및 배급사, 제작사, 극장의 수익과 이윤, 그리고 주요 스타배우들의 출연료를 그대로 두고 제작비는 절감해야 하니 빠질 곳은 ‘약자’들의 인건비다. 그러니 한국영화 관객이 1억명을 돌파하고 극장 관객이 1억9000만명, 매출 1조5000억원에 근접하는 지난해 사상 최고의 기록이 스태프 대다수들에겐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계의 실정이지만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경제가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 됐고, 국가 경제 규모 세계 12위, 무역 규모 8위, 국가 브랜드 9위에 올랐지만, 대다수 국민에겐 ‘남의 집 잔칫상’같다. 어찌된 일인지 일자리는 더 불안하고, 청년 백수들은 많아졌다. 먹고 살기가 더 힘들다. 성장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과 상위계층 몇 %에게만 독점된 탓이다. 한국영화 또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세계무대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냈지만 그 과실은 제대로 나누어졌을까? 적어도 ‘촬영장 옆 대나무숲’에서 듣는 현장의 목소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인수위가 향후 5년의 설계도를 만들고 있는 시점이다. 그 중에는 ‘영화 정책’도 포함될 것이다. 한국영화의 ‘지속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할 때, 그 중심은 역시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나 한국영화나 누군가의 ‘열정’을 착취한 성장의 과실을 일부가 독점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화려한 통계나 지표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 공동의 미래’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