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유형
연초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만찬을 다녀온 한 국회의원은 후일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만찬장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이야기를 꼭 했을 거예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함께하는 느낌이 들어야 더욱 신이 날 텐데, 그 점이 아쉬웠어요.”
리더십은 목표 달성을 위해 집단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말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런 점에서 국정목표의 성공적인 실현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이들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얼마나 명확하게 대통령의 비전을 공유하고 국정과제를 실행해 나가느냐가 성공한 대통령의 바로미터가 되는 셈이다.
국정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설득의 리더십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효율성 논리가 앞선 산업화 시대에는 수직적인 리더십이 통할 수 있었지만, 이 시대는 대화를 통해 설득해 나가는 수평적인 리더십이 더욱 효과적이다. “보스는 명령을 하지만, 리더는 대화를 한다”는 말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유형을 잘 대변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사실 보스에 가까운 리더십을 보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우 하얀 백발만큼이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국가의 기초를 만들어 가던 때 내각책임제로 논의되던 것을 대통령제로 바꾼 것만 봐도 그렇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3선 개헌을 이뤄내고 3ㆍ15 부정선거를 통해 4선에 성공한 모습에서 그의 수직적인 리더십이 잘 드러난다. 이 대통령에 대해 트루먼은 “신념이 강한 인물이지만,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독립투사 출신의 경륜 있는 지도자였지만, 반공을 내세워 독재정치에 빠졌고 결국 건국의 아버지인 이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후세대에 가장 높게 평가되는 박정희 대통령도 수직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가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 일하지 않겠으며, 자신의 업적은 후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철저하게 2인자를 배격했고, 반공을 이유로 철저하게 민주 세력을 억압한 것도 수직적인 리더십의 단면이다.
사실 수직적인 리더십은 과업 지향적인 성격이 많다. 박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도 과업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원이라고는 인력밖에 없는 가난한 국가를 수출의 길로 이끌고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일궜다는 점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크리더십의 단면을 포함하고 있다.
12ㆍ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저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먼저 뛰어나가 해결하려는 모습은 그의 일상이었다. 그가 육사에 있을 당시 육사 생도를 이끌고 서울 도심에서 5ㆍ16 군사정변 지지 대모를 한 것은 물론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군홧발로 짓밟은 모습에서 그의 저돌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또 육사와 군부의 친목모임인 오성회, 하나회 등의 리더로서 보스 성향도 잘 보여준다.
반면 전 대통령과 친구 사이였던 노태우 대통령은 똑같은 군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황 적응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그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있을 당시 6ㆍ29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깜짝 약속한 것도 이 같은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는 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직접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등 군인 출신이지만, 문민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리더십이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가져다줬지만, 국정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대통령은 인치형의 리더였다.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타입으로 그의 차남이 소통령으로 불리며 국정에 영향을 미친 것도 그의 인치 스타일에 따른 것이었다. 국무위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법무, 보사, 건설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사퇴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철저한 인사 검증 없이 인사를 진행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인치를 바탕으로 승부사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국가 경제가 파탄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정치에는 귀재였지만, 경제에는 문외한이었던 김 대통령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계은퇴 선언까지 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설득의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해박한 지식에 달변가였던 까닭에 설득의 리더십을 펼치기가 용이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보여준 화합과 공존의 리더십과도 유사한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김 대통령은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적 리더십의 대표주자였다. 인간 중심의 철학을 바탕으로 목표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함께 일한 참모들을 동업자식으로 대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국장급 인사만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해당 국장이 알아서 인사를 하는 권한 위임형의 리더십을 펼쳤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고 원칙을 세우는 데는 일조했지만, 386세대 중심의 코드 인사를 단행, 국정수행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CEO형의 리더십을 보였다. 불도저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진력이 뛰어났으며, “해봤어?” 식으로 각종 개발정책을 밀어붙였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대통령 당선 이후의 4대강 사업이 모두 이 같은 리더십이 발휘된 데 따른 것이었다.
광우병 사태를 명박산성으로 막은 모습에서 소통의 리더십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우리나라처럼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크리더십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좌우를 넘고 내편 네편이 상관없는 탕평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박도제 기자/
pdj24@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