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좋아 축구협회 회장이 되고 싶다던 당찬 소년이 있었다. 15년 후 만나자는 약속을 지킨 의리의 부산 청년,탁월한 숫자감각에 회계사가 딱이다 싶은 머리 좋은 최고경영자(CEO)도 있었다. 바로 회계법인 삼정KPMG의 김교태(54) 대표다.

‘소신과 신념이 돋보이는 직선적 전략가’. 김 대표에 대한 심리분석 전문기업의 진단이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원칙과 정의를 따른다. 윈스턴 처칠을 존경하고 스티브 잡스의 경영관을 추구한다. 그래서 삼정KPMG의 성장에는 김 대표의 힘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솔연(率然)’ 같은 조직을 꿈꾸는 CEO,‘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김 대표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KPMG 본사에서 만났다. 회계사 인생 외길로 인터뷰가 딱딱하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CEO가 되면 두 가지가 커지는데 하나는 방이고,또 하나는 고독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컨설팅회사 CEO의 최대 자질은 미래를 읽는 통찰력(insight),인재를 활용하고 조직을 포용하는 리더십(leadership),비즈니스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역량(competency)이라고 했다.

▶타고난 숫자감각=김 대표의 숫자감각은 남다르다. 가장 좋아한다는 축구 얘기가 시작되자 눈은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1986년 6월 3일 새벽 3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있었죠. 1대3으로 진 경긴데 허정무, 마라도나 등 당대 플레이어들이 출전했습니다….” 날짜는 물론 스코어와 시간까지 막힘이 없다. 마치 데이터를 저장했다 실시간으로 검색해 보여주는 고성능 컴퓨터가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본인도 부인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숫자에 좀 강했어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업계 현황이나 자신의 경력을 얘기할 때는 미리 암기라도 한 듯 정확한 숫자들이 줄줄 쏟아졌다.

남다른 숫자감각은 그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을까. 학창시절 한때 법조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다. 이는 태어난 고향 경북 영주와 무관치 않다.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그곳에서 ‘판사가 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법대 대신 경영대로 진학하고 공인회계사가 됐지만, 어릴 적 꿈꾼 선비정신, 옳고 그름을 판단해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회계감사가 자본주의의 파수꾼 역할로서 판사의 역할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한다. 단단한 무쇠는 수많은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부 1년 만인 성균관대 3학년 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그지만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 직면해야 했다.

직장생활에서 최대 실패는 18년간 몸담았던 산동회계법인이 IMF 사태 이후 대우그룹 회계감사 문제로 영업정지를 당했을 때다. 당시 주니어 파트너였던 그로서는 불가항력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회계법인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한 시장의 신뢰 확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시의 아픈 경험은 30여년 회계사 생활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삼정이 ‘클린 펌(Clean firm)’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됐다.

이런 노력으로 최근 다른 회계법인들이 저축은행에 대한 부실 회계감사로 곤욕을 치르는 동안 삼정은 그 파고를 피할 수 있었다. 부실 저축은행은 아예 맡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에는 금융감독원 및 미국 회계감독위원회(PCAOB) 조인트 품질감리에서 국내 회계법인 빅4 가운데 유일하게 ‘노 코멘트’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또 작년에는 2005년에 이어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주관하는 회계법인 감사대상을 두 차례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대표는 소나무를 자주 언급했다. 소나무는 정중하고 과묵하며 기교가 없고 변하지 않으며 튀지 않아 주위와 잘 어울리는 까닭이다. 일관되게 추구하는 인생관인 항상심(恒常心)과 소신,원칙을 많이 닮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소나무를 주제로 한 사명당의 청송사(靑松辭)도 인용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상생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대기업도 이제 본연의 역할과 원칙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 비용을 치르더라도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의 잣대를 보다 엄격히 가져가야 한다고도 했다. 이 같은 변신을 통해 국내 대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첫 직장생활을 대학졸업 직후 PMM(현재 KPMG의 전신)에서 시작한 김 대표는 KPMG 미국 새너제이(San Jose) 오피스와 영국 런던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3년여의 해외생활 중에서 뇌리에 깊이 박힌 일은 1989년 10월 19일 발생한 진도 7.8의 대지진 때다. 당시 새너제이 오피스에서 근무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오후 4시께 사무실 10층에서 지진을 감지한 그는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 신호등은 고장났고 도로에 교통경찰이 없는데도 누구 하나 먼저 교차로에서 끼어들지 않았다. 양쪽에서 차들이 한 대씩 차례로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거대한 미국을 유지하는 힘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절감했다.

해외 체류 동안 얻은 경험과 인맥이 오늘날 그를 삼정KPMG 대표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KPMG와 함께했다는 사실이 큰 행운이다. 어떤 사람들은 농담으로 내 몸에는 KPMG의 상징색인 푸른 피가 섞여 있다고들 한다”면서 활짝 웃었다.

이후 1998년 IMF 금융위기 때부터 금융 분야의 회계감사, 컨설팅에 주력하며 금융사업본부를 만들어 회계법인 내 핵심사업본부로 성장시켰다.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자산ㆍ부채 실사작업을 하느라 며칠 밤샘은 물론, 꼬박 45시간 동안 뜬눈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 위기는 기회였다. 그런 격동기를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후반에 겪은 것이 회계 전문가로서 큰 자산이 됐다.

김 대표는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금융위기였다. 당시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산업 재편과 금융기관 인프라 구축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개인적으로 금융산업 발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흐뭇해했다.

▶“‘솔연’ 같은 CEO,‘멋진’ 선배이고 싶다”=경영철학을 묻자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얘기를 풀어갔다.

“제가 만들고자 하는 삼정KPMG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솔연’처럼 임무 앞에 저절로 움직이는 조직을 지향합니다.” 솔연(率然)이란 상산(常山)에 사는 뱀으로, 그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그 중간을 치면 꼬리와 머리 둘 다 달려든다고 하는 전설의 동물이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머리와 몸통,꼬리가 하나로 움직인다. 이러한 조직은 인화가 바탕이 돼야 하고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가능하다. 자신부터 이런 조직을 이끄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항상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객을 대하는 마음으로는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담고 있다. 김 대표는 ‘늘 갈망하고, 지식 앞에서 겸손하며 우직하게 정진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삼정KPMG의 지식과 경험이 고객의 경영현장을 밝히는 유용한 빛이 되고, 큰 성공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같은 경영컨설팅회사는 고객이 찾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집니다. 우리 조직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이 고객에게 최상의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고객과 같이 고민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는 이런 말도 강조한다. ‘소신과 원칙’ ‘소탐대실하지 마라’ ‘크게 보고 멀리 보라’ 등이다. 그는 단기적으로 의(義)를 버리고 이(利)를 취하면 반드시 후에 불행이 따른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느꼈고, 진심이면 어디서 누구와도 통한다는 믿음이 있다.

후배들에게는 신뢰가 생명인 회계법인의 CEO다운 당부를 했다. 처칠의 ‘진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볼까 신발끈을 매는 동안 거짓은 지구의 세 바퀴를 돌고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자기성찰을 통해 올바른 정의에 근거한 원칙과 소신에 충실할 것을 그는 당부했다.

임직원들에게 그들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인생 선배이자 멘토로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회사 직원들과는 꽤 자주 소주잔을 기울인다. 직원들과의 번개모임도 좋아한다. 전 직원 2550명,이 중 회계사가 1500명가량이다. 평균나이 33세의 조직을 이끄는 CEO답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1971년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 때였다. 에드거 앨런포의 ‘After 20Years’를 읽으면서 영어선생님이 “우리도 이 소설처럼 15년 후인 1986년 1월 1일 오후 1시 부산 동래 금강원 앞에서 만나 친구들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보자”는 색다른 제안을 했다고 한다. 당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고 약속 장소에 나간 사람이 바로 김 대표다.

고교(부산 배정고) 동창 모임인 삼수회,대학동창 모임인 망상회 등이 그의 든든한 후원군이다. 6명으로 이뤄진 망상회는 어릴 적 동해 망상해수욕장에서 의기를 투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가족은 늘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했다. 부인 김도희(50) 씨에 대해서는 ‘한석봉의 어머니’로 비유했다. 내조도 아끼지 않지만 나태해질 때는 채찍질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이 붙였다.

딸 정민(25) 씨는 뉴욕에서 그래픽디자인 관련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아들 정현(23) 씨도 미국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한다.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야”=향후 포부를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다소 원론적인 얘기지만 모범답안을 들려줬다. “‘항상 이렇게 해온’ 과거에 사로잡혀 새로운 미래를 여는 현재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늘 초심을 갖고 경쟁력 있는 회사,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회사로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연은 순풍이 아닌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는 처칠의 말처럼 열정과 도전정신이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해 젊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목표도 남다르다. 100개국 여행, 세계 100대 골프코스 라운딩, 골프 레슨프로, 대한축구협회장 도전, 사회봉사활동을 꼽았다. 유년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그의 애정은 아직도 그를 꿈꾸게 한다. 실현 가능할 것 같기도,아닌 것도 같지만 그의 목표는 하루하루 그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풀무와 같아 보인다.

인터뷰=김형곤 증권부장 /kimhg@heraldcorp.com

정리=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김교태 대표 걸어온 길> ▷경북 영주 출생

▷부산 배정고ㆍ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산동회계법인

▷삼정회계법인

▷삼정회계법인 대표

<김영욱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본 김교태 대표> 고(故)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했다. 내 친구인 김교태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그는 여러 차례 시련을 겪었다. 우선 대학입시의 실패였다. 같이 다녔던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시에서도 공부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친구가 대학에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됐을 정도다. 그가 다닌 성균관대가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단지 원하던 대학을 못 갔기에 시련이었다는 의미다. 그래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어렵다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3학년 때 합격했다.

두 번째는 그가 다니던 회계법인의 파산이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잘나갔다. 자신의 역량과 열정을 모두 바쳤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가 외환위기 후 대우그룹의 패망과 함께 순식간에 망했으니 그가 받은 충격은 어떠했겠는가.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지금의 회계법인에서 다시 시작했다. 저번처럼 열심히 했고, 역시 고속 승진했다. 하지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종류가 달랐다. 당시 CEO가 갑자기 제휴법인(KPMG)을 바꾸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그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할 일은 둘 중 하나였다. 옳지 않은데도 CEO를 따라갈 거냐, 아니면 그만둘 각오를 하고 옳은 길을 택할 거냐였다. 아마 나 같으면 전자를 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달랐다. 설령 그만두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정의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이던가. 나중에 동료와 후배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그는 CEO로 추대됐다.

그는 이처럼 많은 시련을 이겨냈다. 한 번이라도 좌절했다면, 단언컨대 오늘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친구들의 롤 모델이 돼 있다. 자녀가 대입에 실패하면 꼭 김 대표 얘기를 한다. 시련은 오히려 보약이라고. 시련이 실패가 아니며, 좌절이 실패라는 말도 덧붙인다. 참 또 있다. 바르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것, 요즘 내 아이에게 김 대표 얘기를 하면서 강조하는 말이다.


kimh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