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삼각관계 ‘트와일라잇’ 청년과 마녀의 사랑 ‘뷰티풀 크리처스’ 이종과의 사랑에 빠진 인간들

신분·종교·인종 장벽 등 기존구조 탈피 하이틴 로맨스의 진화는 어디까지…

‘별유연심비인간’(別有戀心非人間)이라고 해야 할까? 이팔청춘들이 ‘괴물’과의 사랑에 빠졌다. 소녀가 흡혈귀를 연모하고, 좀비와 사랑한다. 소년은 외계인과 사귀고, 마녀와 열애 중이다. 서구 ‘하이틴 로맨스물’의 최신경향이다.

인류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부터 함께해온 러브스토리. 무릇 사랑을 막는 시련과 걸림돌이 있어야 얘기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연애담들이 신분, 종교, 민족, 국가, 연령, 인종, 성별 등 쓸 만한 ‘카드’는 다 써버렸으니 사람들을 매혹시키려면 더 새롭고 강력한 패가 필요하다. 그래서 당도한 이야기가 괴물과의 로맨스, ‘이종’(異種) 간의 사랑이 아닐까.

괴물과의 로맨스라면 서구에서 현대의 클래식이 된 작품이 스테파니 메이어의 소설, 그리고 이를 영화화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다. 이 영화는 여고생에서 성년이 돼 가는 여성과 뱀파이어 가문의 청년, 늑대 종족의 일원인 또 다른 남성과의 삼각관계 연애담을 그렸다. 이 영화에서 흡혈이라는 원죄를 타고났지만 ‘영생’과 ‘초인적 괴력’을 그 대가로 누리는 뱀파이어 혈통은 선민 혹은 귀족 계급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여성은 말하자면 평민출신인데, 뱀파이어의 후손과 결혼함으로써 귀족 가문의 일원이 되는 ‘신데렐라’다. 금욕주의적인 기독교도로 알려진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는 주인공 남녀에게 결혼 전까지 잠자리를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혼전순결의 교리를 강조할 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욕망을 강렬한 공포와 불안, 혼돈과 함께 불길한 것으로 묘사한다.

여주인공의 결혼과 출산을 인간으로서의 죽음과 뱀파이어로서 부활의 과정으로 은유한 것도 흥미롭다. 요컨대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보수주의적 가치에 바탕한 하이틴 로맨스 혹은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영 어덜트 노블(무비)’로 꼽힌다.

18일 한국에서 개봉한 또 다른 하이틴 로맨스 영화 ‘뷰티풀 크리처스’는 미국에서 제2의 ‘트와일라잇’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작가 캐미 카르시아와 매거릿 스톨의 동명 소설 4부작 중 첫편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한 청년과 마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트와일라잇’으로 대표되는 최근 하이틴 로맨스물의 경향을 잇고 있되 그 정서와 세계관은 ‘트와일라잇’과 맞은편에 서 있다. ‘트와일라잇’이 보수주의적이라면 ‘뷰티풀 크리처스’는 자유주의적(리버럴)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유컨대 ‘트와일라잇’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다면 ‘뷰티풀 크리처스’는 드림웍스의 작품 같다.

‘뷰티풀 크리처스’는 일단 ‘트와일라잇’에서의 남녀 역할을 뒤바꾼다. 남자가 인간이고, 여자가 ‘비인간’의 혈통을 가졌다. 즉 저주받은 마녀의 피를 갖고 태어난 존재다. ‘리나’(앨리스 엔글레르트)라는 여고생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개틀린의 한 학교로 전학을 온다. 고교 졸업반인 에단(엘든 이렌리치)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학생 리나에게 한눈에 빠진다.

하지만 리나는 남북전쟁 당시 개틀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대를 이어온 저주의 피를 갖고 있는 몸. 곧 돌아올 16세 생일에 최강의 힘을 지닌 어둠의 마녀가 될 운명이다. (16세는 북미지역에서 보통 ‘성관계 승낙이 가능한 최소연령(age of consent)’이다.)

베일에 휩싸인 괴팍한 삼촌 메이컨(제레미 아이언스)과 비밀을 안고 사라진 에단의 어머니, 악마의 혼령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리나의 어머니(엠마 톰슨) 등 사이에서 리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비밀을 알고, 에단과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여고생의 전학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트와일라잇’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졌지만, ‘뷰티풀 크리처스’는 성적 금기에 대한 강박증을 벗어던지고 있으며, 여성을 괴력과 이야기의 주체이자 능동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트와일라잇’이 못 가진 유머와 인용도 넘쳐난다.

극중 무대인 개틀린은 “금서목록으로 가득한 종교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에단은 미국의 냉소적인 유머리스트이자 탁월한 사회파 소설가인 ‘제5도살장’의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끼고 살고, 여주인공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괴짜이자 악동이며 신랄한 시인이자 독일계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와 J.D 샐린저, 존 캐루악 등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인용된다.

영화 ‘타이타닉’을 언급하는 장면이나 “마녀들이 원래 워싱턴D.C에 모여 있다가 마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간, 낸시 레이건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왔다”는 대사도 웃음을 자아낸다. (한글자막에는 낸시 레이건 대신 ‘대통령 영부인’으로만 번역됐다). ‘뷰티풀 크리처스’는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에선 약간 기우뚱거리지만, 다양한 인용과 비유들이 즐길 만한 작품이다. 한편으론 하이틴 로맨스물의 변화와 진화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