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법정. 판사는 이날 오전 2시간 동안 13건의 선고를 하고 20건을 심리했다. 한 사건 당 채 4분도 안 되는 시간이다. 쫓기듯 심리가 진행됐지만 시간은 지체됐다. 판사는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이런 풍경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판사들은 매일 쏟아지는 사건들을 심리하느라 시간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70개 법원의 법관 1인당 연간 재판 처리 건수는 671건이다.

문제는 판사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여러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일 울산지법에서는 판사가 ‘심리 진행을 방해했다’며 변호사에게 감치 대기조치를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오히려 판사가 변론권 행사를 막았다고 반박했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꼭 필요하다 생각하는 증인신문을 하려고 할 때 판사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끊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법원이 정작 소송 당사자와는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지적에 판사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공판중심주의 강화로 업무부담이 더욱 커졌다”며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시행되는 법원은 미제사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지방지원 정도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발하는 판사 막말 사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동부지법이나 부산지법에서 일어난 막말 사태 수준의 노골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소송당사자 입장에서 불쾌할 만한 일은 예사로 일어난다. 이 때문에 법관 수를 늘려 업무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현실은 현재의 업무부담 수준을 유지하기도 벅찬 형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오는 2015년까지 해마다 150명 정도의 판사 수를 늘려야 소송처리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법원 측은 나름 법관 수를 늘리고, 사법보좌관제도 등을 실시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늘어나는 사건 수를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다.

대한변협 노영희 대변인은 “판사 개개인의 직업정신과 윤리의식 함양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힘들다”며 “판사들이 정말 업무부담 때문에 한 사건에 집중하기 힘들다면 판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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