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와 영천을 당일코스로 출장을 다녀왔다. 도로변은 이미 완연한 새봄의 모습이었다. 진하게 물든 보랏빛 진달래와 여러 대의 가지에 달린 노란꽃잎의 개나리가 풍성하게 피었다. 영상 20도를 넘나드는 정오의 따사로운 봄볕은, 지난겨울 혹한의 애증마저 소멸시킬 듯 했다.

귀경한 저녁녘, 서울은 기대와 달리 여전히 봄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내 고향 서울에도 속 터지게 느리지만 봄의 전령이 찾아왔다. 시차를 두고 똑같은 계절을 연이어 두 번 느끼는 호사로움은 잠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국땅에 다녀온 느낌이랄까. 해외이민자가 고국에 와서 지방출장을 간 것처럼. 같은 나라 같은 땅에서도 이러할 진데, 태어난 조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큰 용단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금메달리스트였던 쇼트트랙의 안현수는 지금은 러시아의 ‘빅토르 안’으로 변해 있다. 한국에서 이룩한 지명도를 일순간 과거지사로 돌리고, 2011년 4월 홀연히 러시아로 귀화했다. 당시 매우 파격적이며 자제력을 상실한 충동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없는 그들만의 파벌의식이 결국 한 선수를 극단의 결정으로 몰아가게 했다. 그리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주변과의 관계정립에 지쳐 있었다. 이대로 선수생활을 끝낼 수 없다는 견고한 의지가, 그 누구도 탓할 수도 없고 막아설 수도 없는 귀화로 이어졌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그와 우리는 자웅을 겨루게 될 것이다.

베트남의 왕족이었던 이용상은 고려시대 고종 13년(1226년)에 귀화한 인물이다. 자국의 급난을 피해 옹진반도의 화산에 정착하게 된다. 무예가 남달라 인근 해적을 소탕하기도 하고, 몽골군의 침입 때는 전과를 세우기도 했다. 그의 용맹성과 기개를 칭찬키 위해 왕은 ‘이씨’ 성과 재물을 하사했다. 자손들은 대제학과 안동부사를 역임하며 명문가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 남한에 1400여명이 살고 있다. 성공한 귀화인 가족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은 현재 10만명이 넘어섰다. 특별귀화를 요청하는 사례도 동시에 늘어나는 추세다.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제사회의 경쟁력을 확보키 위한 세계사적 큰 흐름이다. 헌데 우리는 밖으로는 한류를 말하고 안으로는 배타적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래선 ‘제2의 이용상’과 같은 인재를 키울 수 없게 된다.

은연중에 타인을 무시하는 습관은 직업과 직종과 부의 소유 여부에 따라 인위적으로 나뉘는 우리의 갑과 을의 구도에 기인한다. 사라져야 할 폐단이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개인의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양질의 토양이 마련돼야 좋은 식물이 자라나는 이치와 같겠다. 국가는 물론 개인 간 소통이 원활하고 지향점이 일치할 때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는 법이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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