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내 아이 내가 알아서 키울테니 남의 가정일에 감놔라 배놔라 참견 마세요!”
사이버 학교폭력은 눈에 띄는 ‘외상’을 남기지 않는 탓에 부모나 학교 측이 그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피해학생이 사이버 학교폭력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해도, 부모는 이를 또래 친구와의 가벼운 갈등 정도로 여기고 지나치기가 쉽다. 특히 사이버 학교폭력으로 ‘내상’을 입은 자녀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도 상당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사이버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김호영(17ㆍ가명) 군이 그랬다. 강원도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군은 학교폭력 상담창구를 통해 수 차례 괴로움을 호소했다.
“ ‘바보’라며 계속 놀리고 카톡으로 똑같은 소문을 퍼뜨린다. 한 친구가 게임 아이템을 선물하라고 괴롭혀서 선물했는데, 엄마에게 들켜서 혼이 났다”는 것이 주된 상담 내용이었다.
상담을 진행했던 상다미쌤은 김 군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 김 군의 우울증세가 심하다며 정신과 치료를 여러 차례 권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 군 부모는 “우리 아이는 경미한 지적장애를 겪고 있고, 원래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냥 내버려두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상담센터 측은 “가정형편 때문이라면 진료비를 지원하겠으니 김 군이 진료받도록 해야 한다”며 김 군 부모를 설득했다. 경미한 지적장애를 겪고 있던 김 군이 사이버 학교폭력으로 인해 이상행동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강릉까지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김 군의 부모는 “치료비용 지원 같은 건 필요없다. 참견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군은 힘들 때마다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어 괴로운 마음을 털어놨지만 이마저도 김 군 부모는 “더 이상 117에 전화를 걸지 말라”며 말리기에 급급했다. 6개월여가 지나면서 김 군은 “이제는 친구들이 때리기까지 한다. 전학을 가고 싶다”며 눈물로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이버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김 군은 더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열린의사회 김태윤 팀장은 “아무리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구제하고 싶어도, 부모의 협조가 없으면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도움을 주기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또 “외상이 딱히 없다고 해도 그 후유증은 심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사이버 학교폭력에 대한 부모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모의 강한 거부감 역시 피해학생을 방치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송은정(16ㆍ가명) 양은 학교폭력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손목을 그으면 어떻게 될까요?” “목을 매면 아플까요?”등의 심각한 질문을 자주해 상다미쌤을 놀라게 했다.
사이버 불링과 사이버 갈취 등의 피해에 노출돼 있던 송 양은 “부모님에게 말해도 소용없다. 엄마는 공부를 잘해서 1등하면 다 해결된다고만 말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상담센터 측은 송 양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 아래 송 양 부모에게 치료 동의를 요청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송 양의 부모는 “우리 애가 미쳤다는 말이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가 나중에 시집 못 가면 책임지겠느냐. 고발하겠다”며 노발대발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자녀의 상황을 알렸을 때 거부감을 보이며 방치하는 사례는 크게 양분된다고 설명한다.
한 상다미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당장 생계가 급한 부모는 ‘비자발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갖춘 부모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문제를 덮고 가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모의 인식개선 역시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