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출연료 미지급 사태, 연봉 1000만원 미만 ‘생계형 배우들’에 직격탄…최저 등급 회당 27만6000원 그마저도 못받아 막다른 길
그들은 연예계의 화려함을 지속시키는 기둥이지만 슬퍼하고 있다. 예술가도 아닌데, 노동자로의 대우도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 없는 유령으로 살아가기에 먹고살 걱정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번번이 출연료도 떼먹히는 현실이다.
또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불거졌다. 이미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아들녀석들’의 출연배우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미지급 출연료가 총 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방송된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도 애프터스쿨 멤버 리지가 이 일을 언급했다. “제작사 대표가 해외(필리핀)로 도망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들녀석들’은 신생 제작사 투비엔터프라이즈가 만든 드라마다.
출연배우들이 받지 못한 미지급 출연료는 상당하다. 배우 이성재가 약 1억1000만원, 나문희가 7900만원, 명세빈이 5000만원, 서인국이 4800만원이다. 나문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마치 빚 받으러 온 사람 같다”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당연한 ‘노동의 대가’인데, 그게 마치 빚쟁이가 돼버린 씁쓸한 현실이었다.
이름난 배우들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에 속이 타지만, 이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쪽은 이름 없는 연기자들이다. 일부 톱스타의 생활은 분명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연예계는 출연료를 놓고 보면 철저한 계급사회다. 한연노(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소속된 대부분의 연기자들의 급여(?)체계를 살펴보면 이들의 삶은 일용직 노동자와 같았다.
한연노에는 탤런트, 개그맨, 성우, 연극인, 무술연기자 등 총 50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 가운데 70% 이상의 조합원은 현재 연봉 1000만원 미만의 생계형 배우들이다. 톱배우 장동건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1억원( ‘신사의 품격’)이었으니, 자본주의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연기자들은 방송사에서 매기는 등급제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다. 방송사 드라마 출연료는 최저 6등급에서 최고 18등급까지 총 13단계로 구분된다. 10분을 기준으로 3만4550원에서 14만6770원까지 출연료가 단계별로 올라가는 식이다. 최저 등급의 성인 연기자로 치면 한 달간 20일을 드라마에 출연해도 1년 기준으로 831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회당으로 치면 주간, 주말 드라마에서 최저 등급이 27만6000원, 최고 등급은 117만원이다.
회당 적게는 몇십만원 정도되는 드라마 출연료, 문제는 이 역시 연기자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다. 캐스팅 디렉터,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생활고 연기자를 위한 직업소개소 직원인 그들의 몫을 따로 떼줘야 한다. 무려 30%나 되는 수수료다. 이는 생계형 배우들에겐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출연료 등급 조정은 전적으로 방송사를 통해 진행된다. 평범한 직장들의 연봉계약처럼 1년에 한 번 진행된다면 다행이지만, 탤런트의 경우를 제외하곤 한 번 정해진 등급에 따라 수년씩 ‘쥐꼬리만한’ 출연료를 챙겨야 한다. 특히 개그맨들의 경우, 5~6년에 한 번 등급 조정이 이뤄지는 정도다. 인기 개그우먼 정경미 역시, 최근에 들어서야 8~9등급 정도로 조정됐다. 등급을 정하는 기준 역시 애매하다. 연기자들의 인지도에 따라 방송사의 몇몇이 모여 결정되는데, 그것이 엄격한 ‘객관적 기준’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하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출연료인데,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한연노는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0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방송3사의 출연료 미지급금은 43억원을 육박하고 있다. MBC가 총 18억원( ‘오자룡이 간다’ ‘아들 녀석들’)으로 미지급액이 가장 많고, KBS는 ‘공주가 돌아왔다’ ‘국가가 부른다’ ‘도망자’ ‘프레지던트’ ‘정글피쉬2’ 등의 작품에서 총 13억원을 미지급했다. SBS 역시 ‘신의’ ‘더 뮤지컬’과 SBS 플러스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작품에서 12억원의 출연료를 미지급했다. 2012년 말 미지급금 규모가 13억원 정도였던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상승세다. ‘아들녀석들’ 미지급 출연료에 대해선 MBC가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보증금 한도 5억원 이내다. 그래도 낮은 등급 출연자의 경우, MBC에서 전액 지급하겠다는 생각이다. 고액 출연자의 경우 “책정된 출연료의 10%를 삭감해 지급하겠다”는 생각이지만, 한연노와의 의견 차이는 여기에서 한 번 더 불거진다.
MBC의 경우 현재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지만, 그간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방송사는 수수방관이었다.
악덕 외주제작사들은 잠적해버리고 방송사는 이미 지급할 금액을 다 지급했다는 ‘나 몰라라’ 식이다.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건실한 외주제작사도 속이 탄다. 드라마를 만들고도 콘텐츠에 대한 수익 등 모든 권리는 방송사가 가져가는 상황에서도, 편성 한 번 따내려 방송사 눈치만 보게 된다는 거다. 거기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도 발생한다.
원성은 원성대로 듣는 당사자가 바로 외주제작사다. 때문에 그룹에이트, 팬, 초록뱀미디어 등 드라마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국내 25개 드라마제작사가 소속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표준계약서 제정에 외주제작사 독립제작사 신고제, 등록제 내용을 포함시켰다. 예정대로였다면 6월 안에 추진돼야 했을 표준계약서는 현재 공신력을 얻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미지수가 됐다.
이 부분에 대해 방송사는 탐탁치 않은 눈치다. 외주제작 의무비율이 시행된 이후의 성과를 돌아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상황이다.
연기자들은 방송사에 요구한다.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근로자로의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말한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갑의 모습을 보이지 말아 달라며, 톱스타가 아닌 그들도 “존중해 달라”고 항변한다. 물론 방송사들은 “우리는 주인 없는 회사(공영방송)이니, ‘갑’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 생계형 연기자들은 ‘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방송가에서 ‘상생의 공정경제’는 남의 일로만 보인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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