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들은 ‘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예술가도 아닌데, 노동자로의 대우도 해주지 않는답니다. 이름 없는 유령으로 살아가기에 먹고 살 걱정만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번번이 출연료도 떼먹히는 현실이랍니다.

또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MBC에서 방영됐던 주말드라마 ‘아들녀석들’의 출연배우들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지급 출연료가 총 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밤 방송된 ‘라디오스타’에서도 애프터스쿨 멤버 리지가 이 일을 언급했었죠. 제작사 대표가 해외로 도망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고요. 필리핀이었습니다. ‘아들녀석들’은 신생 제작사 투비엔터프라이즈가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출연배우들이 받지 못한 미지급 출연료는 상당합니다. 배우 이성재 씨가 1억1000만원, 나문희 씨가 7900만원, 명세빈 씨가 5000만원, 서인국 씨가 4800만원이에요. 나문희 씨는 이날 “마치 빚 받으러 온 사람 같다”는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연한 ‘노동의 대가’인데, 그게 마치 빚쟁이가 돼버린 현실이라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름난 배우들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에 속이 타지만, 이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쪽은 이름 없는 연기자들입니다. 일부 톱스타의 생활은 분명 화려해보입니다. 하지만 연예계는 출연료를 놓고 보면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한연노(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소속된 대부분의 연기자들의 급여(?)체계를 볼까요. 한연노에는 탤런트, 개그맨, 성우, 연극인, 무술연기자 등 총 5000여명이 소속돼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70% 이상의 조합원은 현재 연봉 1000만원 미만의 생계형 배우들입니다. 톱배우 장동건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1억(‘신사의 품격’)이었습니다.

이들 연기자들은 방송사에서 매기는 등급제에 따라 출연료를 받습니다. 방송사 드라마 출연료는 최저 6등급에서 최고 18등급까지 총 13단계로 구분합니다. 10분을 기준으로 3만4550원에서 14만6770원까지 출연료가 단계별로 올라갑니다. 최저등급의 성인 연기자는 한 달 간 20일을 출연한다 해도 1년 기준으로 831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회당으로 치면 주간, 주말 드라마에서 최저 등급이 27만6000원, 최고 등급은 117만원입니다. 여기엔 야외비, 식사비, 교통비도 포함됩니다. 물론 식사비, 교통비도 천차만별이라는게 아이러니죠. 최저등급 연기자의 경우 식사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통비라고 다 지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방송사에서는 교통비를 지급할 때, 출발지역과 도착지역에 정해둡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출발해 김포에 도착해 촬영을 할 경우엔 교통비가 지급되지만, 스케줄에 변동이 생겨 중간에 이동하게 되면 기준점이 달라지게 돼 같은 금액의 교통비를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쨌든 회당 적게는 몇십만원 정도되는 드라마 출연료, 그 돈은 고스란히 연기자의 몫이 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캐스팅 디렉터, 직업소개소 직원같은 거죠. 그분들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있습니다. 무려 30%나 됩니다. 생계형 배우들에겐 부담스러운 액수일 겁니다.

출연료 등급 조정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연봉계약처럼 일년에 한 번 가능할까요? 탤런트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방송사에서 연기자들의 인지도 등을 고려해 등급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객관적 기준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그맨들은 또 다릅니다. 이들의 경우 5, 6년에 한 번 등급 조정이 될까 말까 합니다. ‘국민여신’ 정경미 씨가 그랬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8, 9등급 정도로 조정이 됐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출연료인데,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한연노는 더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2013년 6월까지 출연료 미지급금은 43억원을 육박하고 있습니다.2012년 말 미지급금 규모가 13억원 정도였던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상승세입니다.‘아들녀석들’ 미지급 출연료에 대해선 MBC가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보증금 한도 5억원 이내에서죠. 특히 낮은 등급 출연자의 경우, MBC에서 전액 지급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도 한연노와의 의견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방송사는 수수방관이었습니다.

악덕 외주제작사들을 잠적해버리고 방송사는 이미 지급할 금액을 다 지급했으니 ‘나 몰라라’ 식입니다.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건실한 외주사도 속이 타죠. 드라마를 만들고도 콘텐츠에 대한 수익 등 모든 권리는 방송사가 가져가고, 편성 한 번 따내려 방송사 눈치만 보게 된다는 겁니다. 거기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도 발생합니다. 외주제작사도 욕은 욕대로 먹는 거겠죠. 그래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표준계약서 제정에 외주제작사 독립제작사 신고제, 등록제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언제 완성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공신력을 얻는 것이 관건이지만, 방송사는 탐탁치 않은 눈치입니다. 외주제작 의무비율이 시행된 이후의 성과를 돌아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상황인 겁니다.

연기자들은 방송사에 요구합니다.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근로자로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갑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존중해달라는 겁니다. 톱스타가 아닌 그들을 말이죠. 물론 방송사들은 “우리는 주인없는 회사이니, ‘갑’일 수 없다”고 합니다. 공영방송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요. 지금 방송가에서 상생의 공정경제는 남의 일로만 보입니다.

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