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리 구원투수로 취임 세계 10대 반열에 올려 놓은 야전사령관…보험업계 최장수 CEO 그의 삶과 열정을 엿보다

너무 아파 걷지도 못할때 할머니 등에 업혀 등교…조퇴 하더라도 출석부 체크해야 집에 올 수 있었죠. 지금의 야성과 근성 할머니께 배워.

대학생때 시위만하다 정작 배운게 없어. 정신적으로 재무장 필요한 시기 해병대에 자원입대…그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체득.

제대후 고시에 매달려 ‘행시’에 합격, 관료의 꿈 이뤘지만…1998년 25년 몸 담았던 공무원 생활접고 부실기업 대표이사로 고난의 나날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직원들과 백두대간 종주 등 한명 한명에 야성을 심어줬죠…이젠 일선서 물러나지만 후배들은 포기말고 도전했으면….

“어제 서랍을 정리하다가 15년 전 이 자리에서 읽은 취임사를 발견했습니다. 취임 당시 회사는 생사가 걸린 위태로운 상태에 직면했습니다. 사장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필연적으로 뼈를 깎는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리라고. 전의에 불타는 야전사령관과 같은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결연한 의지와 함께, ‘최고 회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나락의 위기에 직면했던 코리안리(당시 대한재보험사)의 ‘사령탑’을 맡아 ‘야성 경영’의 기치를 올린 지 15년. 코리안리는 명실상부한 세계 10위의 재보험사 자리에 올라섰다. 관료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해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아온 박 부회장의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바닷가 촌놈… 할머니의 ‘근성’을 배우다=박종원 부회장의 아이콘은 ‘야성’이다. 박 부회장에 따르면 야성은 변화된 환경에 빨리 적응해 살아남는 생존 본능을 뜻한다. 무너져가는 코리안리의 경영 철학도 여기서 나왔다. 이 야성의 근간은 ‘근성’이다. 근성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경기도 화성 바닷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 부회장은 할머니의 지극한(?) 돌봄 속에 자랐다. 박 부회장은 비바람이 부나 눈보라가 치나 단 하루도 빠짐 없이 학교에 가야 했다. 조그마한 몸뚱이에 불이 날 정도로 열이 올랐을 때도 학교에는 꼭 갔다. 결국 초ㆍ중ㆍ고교 통틀어 12년 개근상을 받았다.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는 할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어요. 조퇴를 하더라도 일단 학교 출석부에 체크를 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죠. 끈질긴 성격은 이때부터 만들어진 것 같아요.”

박 부회장이 고교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위암 판정을 받고 서울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박 부회장은 두 팔에 직접 할머니를 안고 택시를 타고 시골로 내려왔다. 할머니는 두 달여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만 생각하면 박 부회장의 가슴은 아직도 미어진다.

“할머니는 고모(딸)보다 손자인 저를 더 아끼셨어요. 고모와 제가 동갑인데 등록금을 주더라도 저한테 먼저 줬죠.”

할머니의 영향이었을까. 박 부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키웠다. 연년생 아들만 셋인 탓에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박 부회장은 예의범절을 중시했고 도의적 책임감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감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여기서 어긋나면 거침없이 몽둥이를 들이댔다.

“어릴 때 몽둥이로 머리를 때린 적이 있었나 봐요. 요즘 아들녀석들이 단체로 저한테 저항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가 가르친 것들에 많은 덕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박 부회장은 코리안리 직원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똑같다. 잘 키워놓은 직원이 나중에 좋은 실적으로 보답해주니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다고 회고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요한 게 정신교육, 인성교육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귀신 잡겠다”… 해병대 자진입대=박종원 부회장은 해병대 출신이다. 절친인 한대수 전 청주시장의 권유로 해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2년 동안 대학을 다녔지만 맨날 시위만 한 탓에 배운 게 없었다. 정신적으로 재무장이 필요한 시기였다. “관료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대학에 들어왔는데 성적은 엉망이었죠. 여기에 저희 집안에는 외아들이 많아 제대로 군대를 다녀온 남자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고생 한번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해병대에 들어가면 백이면 백 파병으로 차출됐다. 박 부회장은 파병도 각오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과를 헌병대로 받으면서 파병에서 제외됐다.

대신 헌병대 중 가장 군기가 센 서울 근무를 자청했다. 그러나 해병대 헌병대는 생각보다 많은 끈기를 요구했다. ‘근성’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박 부회장도 견디기 힘든 생활이 계속됐다. 전우들 중에 초ㆍ중ㆍ고교를 졸업해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대우는 꿈도 못 꿨다.

“하루에 엉덩이 15대 맞는 것은 기본이었어요. 영하 15~20도 날씨에 난방은 고사하고 이불까지 선임들이 차지해서 동기끼리 딱딱한 매트리스를 덥고 겨울밤을 지냈어요.”

‘무장공비’ 사건이 발생하면서 박 부회장의 군 생활은 더 꼬였다. 당시 해병대 복무기간은 27개월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복무기간이 한시적으로 35개월까지 늘었다. 한때 탈영까지 생각할 정도로 고민에 빠졌던 박 부회장은 결국 헌병감의 배려로 강화도 지역 해병대로 전출됐다. 이 부대는 현재 코리안리의 위문 부대가 됐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로 X, 절대로 O는 없습니다. 군생활이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거기서도 배울 점은 많아요. 일단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죠. 제대 후 웬만한 위험은 위험이라고 생각 들지 않더라고요.”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25년간의 관료 생활=박종원 부회장의 꿈은 관료였다. 아버지의 생각도 같았다. 이 때문에 어릴 때부터 관료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군을 제대하자마자 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병행해 준비했다. 그러다 1973년 행시에 합격했다. “남들은 모두 취업준비를 하는데 저만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마음이 위축됐죠. 그러다 행시에 덜컥 합격했고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행정 관료가 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행정업무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보람이 컸다. “사시에 합격해서 남을 추궁하고 심판하는 일은 제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행정 관료가 된 게 천만다행이죠.”

외환위기가 한창이었던 1998년 박 부회장은 25년간 몸 담았던 공무원 생활을 그만뒀다. 당시 재정경제부 공보관을 맡고 있었는데, 환란 ‘소방수’ 역할을 했던 임창렬 경제부총리 옆에서 소방수 보조 역할을 자임했다. 박 부회장은 여느 공무원과 같이 밤낮 할 것 없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온몸을 던졌다.

“당시 선배, 동료 공무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있기에 나라가 지탱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해지더군요.”

▶부실기업 대표이사로=박종원 부회장은 청산 위기에 빠진 대한재보험의 구원투수가 됐다. 그리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다. “대우, 한보 등의 회사채를 보증했던 부분을 재보험 받았고, 그 결과는 IMF 때 3800억원이란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재보험사에 대한 생사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제대로 잠을 못 잤죠. 하룻밤 자면 죽어 있고, 하룻밤 자고 나면 살 정도로 위태로웠어요.” 박 부회장은 우선 망가진 조직부터 재정비했다. 뼈를 깎는 아픔이 뒤따랐지만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이란 게 단순히 인원이나 경비를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조직 분위기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업문화를 혁신시키는 것이죠.” 박 부회장은 기업문화의 변화를 강조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간 직원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뼈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사람도 암에 걸리면 암덩어리를 찾아내 떼어내야 살 수 있듯이, 회사 역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사람은 건강을 회복하고, 기업은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박종원(기업인/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사장) 보험업계 최장수 CEO로 15년간 코리안리를 이끌어온 박종원 부회장은 지난 14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전 직원들과 합심해 이뤄낸 소회를 토로했다.

▶원혁희 회장과의 신뢰=개혁에 나선 박 부회장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대주주인 원혁희 회장이다. 박 부회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원 회장은 나에게 믿음과 신뢰를 갖고 대했고,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기 때문에 소신껏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기업 경영에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공기업의 문제가 바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우기 때문에 임기 3년 만에 바뀌는 악순환을 겪는 겁니다. 관치라는 의미 속에는 우월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방식이 잠재돼 있죠.” 그는 공기업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공무원 출신의 경우 전문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을’의 입장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역량과 잠재력을 키울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해준 사람이 바로 원 회장이었다고 말한다.

2006년 코리안리는 세계적인 재보험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창사 이래 처음 ‘A-’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국내에서의 재보험영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을 돌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눈을 돌렸는데 신용등급이 없으면 거래할 수 없다며 문전박대를 받았어요.” 그때 우리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역부족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큰 벽을 실감했던 것이다. 실패를 맛본 그에게 소중한 조언자가 나타났다. 그의 친구였던 조프리 브룸니(현 에이온 대표)는 고민을 들어보고는 미국 S&P 본사에 직접 찾아갈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브룸니 이 친구는 내가 사장일 때 제일 먼저 만난 해외 거래처로, 지금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꼭 만납니다. 이 친구에게 당시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내 고민을 털어놨더니 S&P 본사에 가서 얘기해 봤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당시 리스크관리팀장과 함께 미국 S&P 본사를 방문해 우리 회사의 신용등급에 대한 주제로 격론을 벌였어요.”

이후 몇 개월 만인 2006년 12월 초 크리스마스 점등식이 있던 날 세계 보험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았다. S&P가 코리안리에 A-란 파격적인 신용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코리안리 창사 46년 만의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백두대간ㆍ히말라야 등정 ‘야성으로 승부하라’=박종원 부회장은 야성론자다. 그의 경영철학이 바로 야성이다. 그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인재들에게 무엇보다도 야성이 있는지를 주의 깊에 살펴본다고 한다. 그저 좋은 스펙에 엘리트란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에서다. 그는 야성을 자연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라고 정의한다. 기업이 살아남아 영속하기 위해서는 생존본능인 야성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뱃속에 있을 때는 탯줄로 밥을 먹지만 밖으로 나오면 젖을 찾아서 젖을 빨아야 하죠. 젖을 못 찾으면 죽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야성입니다.”

기업경영 역시 야성과 같은 생존본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상에 오른 기업일지라도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부단히 변화와 혁신해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급변하는 환경에 과감히 도전해 지속적인 성공을 이끌어 내야 영속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히말라야를 다녀왔는데,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위험한 데 왜 갔느냐’고 묻는 반면, 외국인들은 ‘그렇게 위험한 곳을 어떻게 다녀왔느냐’고 묻더군요.” 그는 위험을 알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도전정신과 강한 정신력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부회장이 노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들의 도전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가 바로 백두대간 종주다. 당시 직원들의 정신이 해이해졌음을 인지한 그는 고민 끝에 유격훈련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결과가 신통치 않자 협력심과 일체감 그리고 근성을 키우기엔 험악한 산을 등정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기업은 기업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 끝에 백두대간 종주를 단행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정신이 기업의 문화”라며 “기업의 정신이 기업을 이끌어 나간다”고 강조했다.

▶열정+입체적 사고+도전정신=성공의 지름길=박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직원들과 회사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는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무슨 일을 하든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이후엔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죠."

그는 특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사고, 상상력을 키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며 “성공도 안이하게 생각하면 성공으로 인한 실패를 맛볼 수 있는 만큼, 한번 성공했다고 해서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15년간의 야성경영 현장에서 내려온 박 부회장이 앞으로 3모작은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어나갈지 관심이다.

김양규ㆍ최진성 기자/kyk74@heraldcorp.com

박종원 부회장은… ▷연세대 법대 졸 ▷美 밴더빌트대 대학원 졸 ▷행시 14회 ▷재무부 외자관리과장, 재정융자과장 ▷재정경제원 총무과장,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재정경제부 공보관 ▷코리안리재보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