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직장인 정 씨(48)에게 지금 살고 있는 성남 분당 야탑동 전용면적 59m² 아파트는 애물단지다. 지은 지 오래돼 수도배관이 낡아 녹물이 나오고, 주차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1992년 준공해 아직 재건축을 할 조건은 못 된다. 리모델링을 했으면 좋겠는데 1억원 이상 분담금과 떨어지는 집값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정부가 지은 지 15년이상 지난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리모델링 대상 아파트를 지금보다 3개층 더 올리고 가구수를 기존보다 15%까지 늘려 일반분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방안’을 내놓았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마다 수백가구까지도 일반 분양이 가능해져 사업비에 보탤 수 있게 되면서 사업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쌍용건설에 따르면 리모델링 단지에서 수직증축을 통해 일반분양을 최대 15%까지 하게 되면 단지별로 조합원 분담금이 최대 35%까지 줄어든다.

정부는 이달 중 국회 심의를 거치면 내년 2~3월부터 3개층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국 서일대 건축학과 교수는 “재건축 중심으로 진행되던 주택 정비사업에서 리모델링이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기신도시 등 400만가구 수혜 대상= 리모델링은 주공한지 15년만 지나면 추진할 수 있다. 따라서 분당, 평촌, 일산, 산본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중층 재건축 단지가 많은 서울 강남구, 강동구 등이 주요 수혜 단지가 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말 기준으로 리모델링 가능 연한인 15년이 지난 아파트는 전국 약 400만가구에 달하며, 이중 150만가구가 실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서만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36곳, 2만6067가구나 된다.

변수가 있긴 하다. 정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하는 기준으로 신축 당시의 ‘구조도면’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포함시켰다. 구조도면이 있어야 건축물의 기초 등에 대한 상태를 파악해 안전한 리모델링이 가능하다는 것.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 중 설계도면을 보유하지 않은 곳은 9% 가량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범수도권공동주택리모델링연합회 등에 따르면 리모델링 추진단지의 상당수는 구조도면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전학수 범수도권공동주택리모델링연합회 회장은 “개포동 대치아파트 등 우리가 파악한 대부분의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설계도면’만 있을 뿐 구조도면은 없다”며 “구조도면이 없다고 평생 리모델링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리모델링을 끝낸 단지 가운데 구조도면이 없어도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시공한 사례가 많다”며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있는 만큼 합리적인 추가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세권·한강변 등 미분양 없는 지역 유리= 정부가 내놓은 3층 수직증축과 15% 일반분양은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일단 리모델링 일반분양은 가구당 증축을 하고 남는 범위에서 가구수를 늘려주는 ‘용적률총량제’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85㎡이하 아파트는 기존면적의 40% 이내, 85㎡초과는 30% 이내의 증축을 허용했다. 단지의 모든 가구에 이 기준을 적용할 때 늘어나는 용적률 범위 내에서만 일반분양분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일반분양을 15%까지 늘리려면 가구별로 허용된 증축 한도보다 작게 증축하는 가구가 많아야 한다. 여유가 생기는 면적 만큼 일반분양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60m² 이하 아파트 단지로 대부분 가구가 증축허용 한도까지 늘려야 리모델링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일반분양 물량을 만들기 어렵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일반분양을 많이 만들수 있고 미분양 우려가 없는 서울 강남권 중대형 단지는 사업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지만, 주택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사업추진이 지지부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결 과제 많아= 리모델링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넘어야할 관문도 많다. 리모델링시 가구 수 증가에 따른 도시·인구 과밀에 따른 교통시설 부족 등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특별시·광역시·50만명 이상 대도시는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의무 수립해 이 같은 문제를 막도록 했다. 다만 지자체가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용적률 등 다른 규제를 강화한다면 리모델링 활성화 법안이 무력화할 수도 있다. 이근우 현대산업개발 부장은 “이미 사선제한, 일조권 규제, 용적률 기준 등이 정해져 있어 리모델링 일반분양이 15%까지 가능해졌다고 이를 다 누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지자체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용적률 기준 등을 정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과 형평성 문제도 지적될 수있다. 20~40년이 지나야 사업이 가능한 재건축 사업도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일반 분양물량이 10% 이하로 나오는 곳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