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속 공포 다룬 ‘무서운 이야기2’ 산에서 조난당해 죽음과 싸우고 친구들에게 수모 겪고 집단 따돌림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의 좌절감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건 아닌지…
현대사회에서 ‘공포’는 돈과 권력의 원천이다. 대중들의 공포는 정치 권력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며,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유일한 원리는 시장의 불안을 대면한 경제주체의 ‘대박의 꿈’과 ‘쪽박의 공포’이다. 위험사회 속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과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보험시장이 파놓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이윤의 샘물이 돼 왔다. 문화 산업에서도 ‘공포’는 돈이고 상품이다. 영화는 적대국과 테러단, 유령, 좀비, 귀신, 살인마,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등을 내세워 공포를 팔아왔다. 그중에서도 공포영화는 주로 초현실적 존재나 세계를 등장시켜 객석을 비명의 도가니로 몰고가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한 장르가 됐다.
사람들은 왜 소리를 지르고 눈을 가리면서도 공포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 갈까? 이런 저런 분석과 가설을 요약하면, 생태계 속 천적과 자연의 재난으로부터 생존을 하기 위해 인간은 ‘공포감’을 진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두렵고 무서운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흥분을 극대화시키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고, 쾌감을 얻게 된다고 한다. ‘공포가 주는 쾌감’과 ‘스크린의 바깥에서 느끼는 안도감’, 그리고 피로한 현실로부터 컴컴한 상영관으로의 ‘도피’가 관객이 입장료의 대가로 얻는 것이다.
공포는 자주 초현실적인 세계와 현상, 존재를 다루지만 매우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공포영화는 항상 ‘당대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스크린으로 끄집어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한국 공포영화는 어떤 ‘악령’을 불러냈을까? 총 4편 정도로 꼽히는 올해의 한국 공포영화에서 첫 번째 타자가 5일 개봉한 ‘무서운 이야기2’다. 이 영화는 감독 4명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다른 영화를 잇는 ‘액자’의 구실을 하는 이야기는 ‘444’(감독 민규동)로 보험회사의 지하 비밀 창고가 배경이다. 자정을 향해 가는 으슥한 시간에 야근 중인 박 부장(박성웅 분)과 여직원 세영(이세영 분)이 낡은 서류철을 꺼낸다. 사후 세계를 보는 세영의 기이한 능력을 알아챈 박 부장은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지난 사건 파일을 하나 하나 들춰본다. 그 첫 번째 사건이 단편 ‘절벽’(감독 김성호)이다. 개인 주식 트레이더인 동욱(성준 분)이 큰 손실을 본 후 기분 전환을 위해 친구와 산을 찾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조난된 후 겪는 죽음의 공포를 다뤘다. ‘사고’는 교사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3명의 젊은 여성이 여행길에서 교통사고 후 만나는 사후 세계를 그렸다. ‘탈출’은 여고에 부임한 교생 ‘병신’(고경표 분)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어설픈 행동과 소심한 성격으로 ‘왕따’였던 주인공이 드디어 ‘선생님’이 됐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학교를 찾은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수모를 겪고 놀림감이 된 후 괴로워하다가 ‘흑마술’에 빠진 여고생 사탄희(김지원 분)의 일러준 기괴한 방법으로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만난 세계는 자신을 구원해 줄 천국이 아닌 무시무시한 지옥 같은 곳이었다는 내용. 이야기의 설정을 보면 이 작품이 바탕한 현실이 무엇인지 금방 짐작이 간다. 목숨이 곧 돈인 보험의 세계, 숫자 하나에 수많은 생명이 걸린 주식, 빼앗지 않으면 뺏겨야 하는 무한 생존경쟁,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의 좌절감, 평균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왕따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교실 등 우리 일상을 옥죄는 현실의 공포다. 전체적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공들인 미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현실과 판타지가 만나는 고리를 찾지 못함으로써 관객의 편도체(공포 지각에 관여하는 뇌의 부위)를 자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몇 년간 한국 공포영화가 날것 그대로의 현실과 귀신이나 초현실 세계를 억지로 끼워맞추고 그 틈새를 과장된 음향효과와 화려한 미술로 메우다가 결국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한 패착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10대의 정서와 참신한 발상, 독창적인 스타일이 잘 어우러진 정범식 감독의 ‘탈출’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다양한 감독의 재능과 발상을 거듭 스크린에 옮기며 두 번째까지 이어온 이 시리즈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한국 공포영화로는 이제 아내로부터 배신당한 사이코패스 성형외과 의사(김창완 분)를 주인공으로 한 ‘닥터’와 웹툰 내용과 똑같은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는 내용의 ‘더 웹툰: 예고살인’, 최면 치료를 하는 의사와 여성 환자 간의 이야기를 그린 ‘꼭두각시’ 등이 차례로 개봉할 예정이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는 관객의 외면을 받아왔고, 제작자도 기피하는 장르가 돼 왔다. 못 만들어서 영화가 무섭지 않은 것인지, 현실이 더 공포스러운 까닭인지 아무도 모를 일. 어쨌든 일상이 공포인 현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공포영화의 싸움은 힘겨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