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기자]박명수만이 할 수 있는 예능 영역이 있다. 김구라도 인정했듯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살려내는 능력이다. 무엇으로? ‘밑도 끝도 없는 개그’ 또는 ‘맥락 없이 마구 던지는 개그’다. 박명수는 대놓고 하는 뜬금없는 개그의 1인자다. 최근 ‘무한도전’ 웃겨야 산다 편의 멤버 안고 달리는 논두렁 레이스에서 게스트인 서장훈이 자주 넘어지며 몸개그에 욕심을 보이자 “업자들끼리 왜 그래. 견적 넣었으면 견적대로 해”라고 말해 웃게 만들었다.
박명수의 장기는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거나 별다른 웃음이 안 나올 때 엉뚱한 이야기로 치고나가 국면전환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분위기대로 흘러간다.
사실 ‘나노개그’ 등 말장난 개그는 잘 안 웃기기 쉬워 한두 번 하면 썰렁해진다. 하지만 박명수가 하면 괜찮다. 안 웃기면 그가 하는 특유의 ‘멘트’가 있다. 다른 사람은 안 웃기면 싸한 분위기로 인해 머리를 긁적이게 되지만 박명수는 다른 리액션이 있어 걱정 없이 던진다. “안 웃겨? 안 웃겨? 잘못했습니다.” 이런 식이다. 그동안 수없이 마구 던져 실패했던 경험에서 생긴 노하우다.
박명수는 토크도 되고 몸개그도 된다. 코미디와 버라이어티(토크쇼와 리얼 버라이어티) 양쪽을 휘저을 수 있다. ‘무한도전’에서 분위기를 살리거나 전환할 때 박명수 활용도가 높은 건 이 때문이다. ‘해피투게더’에서도 유재석-박명수 콤비가 식상할 정도로 오래 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박명수의 약점은 진행이다. 그는 ‘나는 가수다’를 비롯해 MBC에서 진행자를 많이 맡아 프로그램을 말아먹기도 했다. 그때 비호감도 생겼다.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돼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예능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그는 앞에서 끌고가는 진행자보다는 옆에서 톡톡 치고나오는 캐릭터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박명수는 ‘베테랑’이다. 신참과 초짜는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 대화에 끼어드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지만 박명수는 후다닥 치고 빠지고, 그다음 상황을 노린다. 그는 기자에게 “짜는 건 잘 못한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순발력과 상상력, 임기응변, 예측불허, 상황을 틀어버리는 것, 허를 찌르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면서 “뻔한 이야기는 가지를 친다. 나는 진행을 돕는 게 아니라 진행 속에서 가지를 치는 작업이다. 상황극 속에서 제대로 된 것 하나가 나오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규도 박명수 못지않은 베테랑이지만 둘은 다르다. 이경규는 베테랑 단계를 넘어 노회한 느낌을 준다. 너무 노회해 무성의한 듯하기도 하다.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 MC 이경규가 ‘남자에게 직장이 중요한가, 집이 중요한가’를 토론하던 중 자신의 의견과 다른 입장을 밝히는 패널에게 “앞으로 제가 진행하는 프로 출연금지입니다”라고 말한 건 유머라 하더라도 과하다.
박명수는 노회한 단계까지 가지는 않는다. 캐릭터도 자신이 바보가 되는 것이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박명수는 무능한 중년 남자 콘셉트여서 동정심을 유발한다. 박명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쭈구리’ ‘리즈’ 시절 서민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무한도전’에서 ‘명수는 12살’ ‘(명수 고향인) 군산 여행기’ 등 박명수를 내세워 추억찾기를 많이 하는 이유다. 박명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맡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큰 힘을 발휘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