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살릴려고 저런데.”
어둠이 알맞게 내려앉은 호수 옆 밝게 빛나는 스크린엔 북극여우 애비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천적인 사냥개를 상대로 으르렁 대먀 물고 뜯고 한창을 싸우고 있었다. 객석에선 한 할머니가 예닐곱이나 될까한 나이 어린 손주에게 영화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다. 서울의 극장에선 겪을 수 없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오히려 정겨웠다. 옆에선 뻥튀기 장수가 은밀한 목소리로 때마침 입이 궁금한 관객들에게 물건을 팔며 지나갔다. 전남 순천조례호수 공원의 한여름밤은 그렇게 익어갔다.
‘세계 최초’를 표방한 제 1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개막식이 22일 열렸다. 천혜의 늪지를 낀 생태도시를 기치로 내걸고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는 순천시에서 야심차게 마련한 행사였다. 이날 개막식엔 당초 마련된 1000여석을 훨씬 넘는 시민과 영화인들이 방문해 순천시의 첫 영화제를 반겼다. 편한 차림의 시민들은 산책하듯 가족단위로 공원에 나와 행사를 즐겼고, 영화인으로는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활’의 김한민, ‘블라인드’의 안상훈, ‘푸른 소금’의 이현승 등 영화감독과 김민준, 오연서, 갈소원, 조희진 등 배우들이 찾았다. 부산에서 전주, 부천, 제천까지 ‘국제영화제’의 규모에 이미 익숙한 영화팬들에겐 차라리 소박해 보였지만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주제와 일반 시민들의 호응만큼은 ‘세계 최초’라는 자랑이 무색하지 않았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3시간여 이상 길게 이어졌던 개막식 프로그램이나 규모 자체만 따지자면 ‘동네 영화제’에 가까왔지만, 초청작 라인업이나 영화제의 주제에선 휴양ㆍ관광도시의 대표적 문화 행사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날 상영된 개막작 ‘북극여우 이야기-35주년 리뉴얼판’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 최북단인 훗카이도에 유빙을 타고 내려온 북극 여우의 1년간을 그린 영화다. 여우가 짝을 짓고 새끼를 낳고 엄한 자연의 순리 속에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는 과정이 담겼다. 지난 1978년 일본에서 23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던 작품을 개봉 35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편집과 더빙으로 다시 선보였다. 이날 개막식엔 감독 미무라 준이치와 북극여우의 새끼 목소리를 맡은 6명의 아역배우, 주제곡을 부른 가수 야마사키 마사요 등이 참석해 관객을 만났다.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에선 오는 26일까지 세계 각국에서 출품한 영화 40여편이 관객을 만난다. 전국의 유기견 입양 가족을 초대하는 동물버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영화캠핑, 작곡가 김형석의 동물음악제 등의 이벤트도 마련됐다.
순천(전남)=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