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일이었다. 국내 드라마에서 대를 이어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 그랬다. ‘운명’같은 만남이었다. 배우 김주혁(41)은 지난 3월 첫방송을 시작한 ‘구암 허준(MBC)’을 통해 6개월간 ‘명의’의 삶을 살았다. 무려 135부작, 어린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모두 담아낸 ‘허준 집대성’ 편을 방불케 했다. 스스로는 “버틴 것만으로 용하다. 죽다 살았다”고 손을 내저으며 “이젠 자유”라고 쾌재를 부를 정도였다.

김주혁으로서도 또 한 번의 사극출연엔 고심이 깊었다. 지난해 2월부터 7개월간 몸고생 사극 ‘무신’으로 시청자와 만났고, 연이은 차기작이 다시 사극이라면 배우로서의 이미지 변신에도 플러스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스쳤다. 때문에 “사극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노래도 불렀다. 하지만 다시 만났다.

“‘허준’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을 하게 된 거에요. ‘무신’을 마친 뒤에 사극을 다시 한다면 ‘허준’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의 영향이 컸죠. 제 나이, 쉬흔 쯤 됐을 때 ‘허준’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김주혁(영화배우/탤런트)
‘흥행불패’ 신화로 꼽히는 브라운관 히트작 ‘허준’, 배우 김주혁은 종영을 앞둔 ‘구암허준’에서 선친 김무생에 이어 허준을 연기했다. 아버지 김무생을 떠올리며 ‘무신’에 이어 한 번 더 사극에 도전한 그는 “아버지 때문에 잘하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드라마를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
김주혁(영화배우/탤런트) ‘흥행불패’ 신화로 꼽히는 브라운관 히트작 ‘허준’, 배우 김주혁은 종영을 앞둔 ‘구암허준’에서 선친 김무생에 이어 허준을 연기했다. 아버지 김무생을 떠올리며 ‘무신’에 이어 한 번 더 사극에 도전한 그는 “아버지 때문에 잘하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드라마를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

김주혁은 그 만남을 ‘운명 같았다’고 했다. 선친인 김무생은 지난 1975년 MBC 대하드라마 ‘집념’에서 허준을 연기했다. 1대 허준, 4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2세 배우로 성장한 그의 아들은 5대 허준이 됐다. 아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이 드라마를 통해 제12회 백상 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과 남자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올라서게 됐다. 일약 스타덤에 올랐기에 “집안도 일으켜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허준’을 김주혁의 허준으로 살려내야 한다는 중압감은 만만치 않았다.

“최대한 솔직하게 연기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알려졌고, 여러 배우가 연기한 허준을 갑자기 특이한 캐릭터로 만들기도 애매한 노릇이잖아요. 워낙에 정직하고 곧은 인물이라 매장면 느껴지는 대로, 가짜 연기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진중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김주혁(영화배우/탤런트)
‘흥행불패’ 신화로 꼽히는 브라운관 히트작 ‘허준’, 배우 김주혁은 종영을 앞둔 ‘구암허준’에서 선친 김무생에 이어 허준을 연기했다. 아버지 김무생을 떠올리며 ‘무신’에 이어 한 번 더 사극에 도전한 그는 “아버지 때문에 잘하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드라마를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
김주혁(영화배우/탤런트) ‘흥행불패’ 신화로 꼽히는 브라운관 히트작 ‘허준’, 배우 김주혁은 종영을 앞둔 ‘구암허준’에서 선친 김무생에 이어 허준을 연기했다. 아버지 김무생을 떠올리며 ‘무신’에 이어 한 번 더 사극에 도전한 그는 “아버지 때문에 잘하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드라마를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아버지 김무생이 저음의 목소리, 날카로운 눈빛의 선굵은 연기로 1대 허준을 실감나게 구현했다면, 5대 허준 김주혁은 보다 인간적인 허준으로 그를 되살렸다. 방대한 한의학 대사를 소화하며 허준의 집념을 표현했고, 백성을 돌보며 눈물을 흘리는 진솔한 모습도 보여줬다. 김주혁 스스로도 “허준에 매회 왜 그렇게 글썽거리는지, 이 드라마를 하며 감성적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소신을 가지고 캐릭터 안에 녹아든 덕에 폭발적인 반응은 아닐지라도, 잔잔한 호평이 줄을 이었다. 동시간대 경쟁작은 9시 뉴스였지만, 10% 초반대의 시청률도 유지했다. “135부에서 10부 정도 밖에 모니터를 못했을” 만큼 빠듯하고 고단했던 마라톤을 끝내니 스스로 만족감도 높다.

“아버지 때문이죠. 잘 하고 싶었던 건 당연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책임감이었어요. 올 한해 가장 고생한 배우는 저일 것 같아요. 고생한 만큼 배운 것도 많습니다. 연기가 많이 늘었어요. 연기대상이요? 준다면 낼름 받아야죠. 하하. 다른 건 몰라도 ‘고생상’은 연말에 꼭 받아야겠어요.”

고승희 기자/ [사진제공=나무엑터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