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신데렐라엔 날개가 없다, 현대 미국에 대한 우디 앨런의 익살맞은 풍자극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의 자기 기만은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이른바 짝퉁가방이라는 ‘진저백’ 사이에 있다. 현대 미국인이 빠진 ‘자기 덫’은 명품숍이 즐비한 뉴욕 5번가와 허름한 인생들이 모여 사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그 사이에 놓였다. 서구식으로 말하자면 추락하는 신데렐라엔 날개가 없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개털신세’된 된장녀에겐 ‘국물도 없다’.
79세인 우디 앨런 감독의 44번째 작품 ‘블루 재스민’의 주인공 ‘재스민’은 한때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명품숍을 누비고 다녔고, 햄튼의 최고급 저택에서 상류 인사들을 초빙해 연일 파티를 열었던 대부호의 안방마님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날은 가고, 빈털털이가 된 채 이제 막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참이다. 옛 영광은 루이 비통 여행가방과 샤넬 재킷, 그리고 에르메스 버킨백으로만 자취를 남겼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재스민은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분)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서 뉴욕의 반대편,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이혼과 파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만나 졸업도 포기하게 만들었던 ‘할’(알렉 볼드윈 분)은 잘 생기고 매력적이며 재스민만을 사랑하는 완벽한 남편이자 사업가였다. 사업도 날로 번창해갔고, 재스민이 누리던 호사도 갈수록 더해갔지만,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고 불운은 겹쳐서 왔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남편의 ‘사업수완’은 부정과 비리로 드러났다. 재스민은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하릴없이 파산을 맞았다.
샌프란시스코의 구질구질한 여동생 집에 와보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어공주의 ‘거품’처럼, 신데렐라의 ‘어젯밤 파티’처럼 뉴욕에서의 생활만 눈에 아른거린다. 그 때마다 혼잣말로 중얼대는 병이 도진다.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을 몇 개씩 섞어 복용해도 소용없다. 그래도 운명의 신은 버려진 신데렐라에게 다시 한번 유리 구두를 신을 기회를 줬다. 한 파티에서 전도유망한 외교관을 만난 것이다. 재스민에게 그는 일등석 인생을 위한 ‘티켓’이었고 로또였다. 과연 재스민의 인생 재역전은 이뤄질까?
화려하지만 신기루같은 뉴욕에서의 삶과 소박하지만 자유롭고 활기에 넘치는 샌프란시스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재스민의 삶을 통해 두 도시가 상징하는 현대 미국의 두 얼굴을 교차시킨 데 있다. 재스민의 전남편 ‘할’은 뉴욕을 상징하는 존재다. 유령회사와 숫자놀음을 통해 거대한 부를 쌓는 ‘월스트리트’의 이면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히 악마적인 탐욕을 가진 사기꾼이나 흡혈귀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매력적인 남자이며 야심에 걸맞는 수완을 가진 사업가일 뿐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사업가와 사기꾼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돈을 불리면 사업가, 남의 돈을 불리면 사기꾼일뿐. 재스민의 ‘자기기만’이 바로 그 사이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재스민의 이혼과 파산에 얽힌 비밀은 재스민의 ‘자기기만’을 스스로 폭로한다. 반면 진저와 그의 남자친구 등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서민들의 삶과 생활의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샌프란시스코의 이면은 소박하면서도 자유롭고 건강한 활력이 넘친다.
우디 앨런이 보여주는 현대 미국은 브랜드로 집약된 취향과 욕망의 세계다. 여동생 이름이 ‘진저’가 명품을 흉내낸 짝퉁 가방에서 유래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된 ‘진저백’과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욕 대부호의 우아한 안방마님에서 늘 투덜대는 고집쟁이 중년여인은 물론이고, 광기어린 표정으로 혼잣말을 늘어놓는 정신분열증세의 여인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훌륭하다. 무엇보다 79세에도 여전히 수다스럽고 능청스러운 재담가이자, 뛰어난 드라마작가인 우디 앨런 감독과 찰떡같은 궁합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의 또 다른 ‘클래식’이라는 찬사가 별로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