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기자]월화 드라마 3개는 모두 재미있다. ‘굿 닥터’는 주원, 주상욱, 문채원이라는 세 의사를 통해 의료윤리 문제를 건드린다. 완벽한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당한 폭행과 갱도에 갇혀 형이 죽고 자신만 살아나와 외과의로서 치명적인 ‘집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원, 실력과 정의감을 갖춘 의사면서 냉혹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김도한. 열정과 밝은 에너지를 지니며 이 두 남자를 보면서 성장할 기회를 얻는 문채원, 이 세 사람이 의사로서 경험하는 에피소드와 병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며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는, 좋은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를 말하고 있다. 특히 세 사람은 ‘사적 영역’인 묘한 삼각관계에 빠져있지만, 의사로서의 ‘공적 영역’에 대한 훼손 없이 잘 전개돼 나가고 있다.

종영을 앞둔 ‘황금의 제국’은 너무 재미있지만 머리가 아프다. 한 회에도 두세 번씩 반전과 뒤통수 때리기가 있다. 인물들의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어 보면서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재벌들의 소유욕과 혈투는 새삼 인간 본심을 까발린다.

1990년대부터 20년간 대기업 성진그룹 내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과 음모와 배신 등이 주 내용이다. 이 드라마에는 성진그룹 오너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요원과 정략결혼한 고수(장태주)는 “웃으면서 밥 먹는 식탁과 성진그룹, 둘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일차적으로 개인적인 욕망을 담아낸다. 최동성 회장(박근형)이 죽고 외동딸 서윤(이요원)이 후계자로 낙점되자, 큰아버지에 의해 희생당한 아버지를 보고 자랐던 조카인 최민재(손현주)는 “성진그룹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최동성 회장님을 가장 미워하는 큰어머니(김미숙)에게 넘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의 분노, 정의를 생각하게 하는 게 이 드라마 최대의 미덕이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쉬어가는 국면이 없다. 이야기 전개의 밀도가 매우 높다. 역사적인 사실을 비유로 드는 등 말의 성찬은 현란하다. 하지만 그 말들은 적확하게 사용되고 있어 폐부를 찌를 때도 있다. 성진그룹의 용역깡패에 의해 가난한 아버지를 잃은 고수는 “돈을 벌고 싶으면 땀을 흘리면 안 되고 남이 흘리는 땀을 훔쳐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이요원은 고수에게 “막스가 말했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이런 세상이 안 온다는 건 알잖아요”라고 말한 후 “설득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힘으로 하는 거죠”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대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사육신이 왜 죽었나. 한 놈이 혼자 살려고 친구들을 다 불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왜 패했나? 카르타고에서 지원이 안와 패전한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는 워털루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영국에 패했다는 소문을 퍼뜨려 영국 중앙은행의 국채를 공도매해 부자가 됐다” “남의 인생 훈수는 두지만 자신 인생은 한 치를 내다보지 못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듯 성공한 사기는 사기가 아니다” “욕심을 이기는 건 더 큰 욕심이다” “사장단은 어차피 신발입니다”. 이런 대사를 계속 배치할 수 있는 것은 ‘추적자’에서도 보여준 박경수 작가의 내공이다. ‘카이스트’ 송지나 작가의 보조작가로 출발했으나 오랜 기간 독립하지 않고 숨어서 내공을 다져온 박 작가가 만들어내는 대사의 힘은 엄청나다.

사실 ‘황금의 제국‘은 야외 촬영이 거의 없다. 식탁 아니면 소파에 앉아 말로서 기업을 호령한다. 말 한마디로 기업의 주인이 왔다갔다한다. 현장 방문 한 번 없다. 거의 토크쇼 수준의 촬영이다. 그럼에도 강한 극성과 스릴, 긴장감이 생기는 것은 박 작가의 치밀한 대사 덕분이다.

‘불의 여신 정이’도 편하게 볼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위기와 극복을 반복하는 ‘올드 패션’ 느낌이 나 밋밋하게 느껴진다. 길러준 아버지를 죽인 이강천(전광렬)에게 복수하하고 조선 최고 사기장이 되려는 유정(문근영)과 이를 돕는 두 남자 광해(이상윤), 태도(김범)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대장금’류 사극 석세스 스토리다. 갈등 양상은 분명하다. 분원에서 정이를 몰아내려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 갈등구도가 시청자에게 실감나게 전달되지 못한다. 정이는 전광렬의 계략으로 실명까지 했지만 시력을 되찾는 과정이 너무 싱거웠다. 이렇게 되면 어떤 갈등을 가져와도 밋밋해져버리고 마는 ‘블랙홀’에 빠질까 걱정된다. 그럼에도 광해를 괴롭히는 형 임해를 연기하는 이광수의 코믹악역연기는 ‘런닝맨’에서의 기린광수를 완전히 지운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 설레는 것은 이상윤과 문근영의 멜로다. 하지만 너무 찔끔 찔끔 보여줘 아쉽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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