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 사회부 기자였습니다. 부산저축은행 피고인에 대한 공판 첫날 서울중앙법원 1층 로비는 수백명의 피해자로 가득했습니다. 허리에 전대를 찬 곱슬머리 부산아주머니들의 울음소리가 건물 기둥을 타고 천장까지 닿았습니다.

당시에는 피해자의 고통을 기록하는데 집중했다면, 경제부 기자가 된 후엔 그러한 고통을 만들어낸 원인을 더 살펴보게 됐습니다. 어떠한 사고도 단선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저축은행 사태 역시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침체,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 감독기관의 무능, 정관계 비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규제업으로서 금융업 특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정책 실패는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저축은행 정책 실패는 크게 몇 가지로 추려집니다. 2006년 저축은행에 1개 사업장에 80억원 이상 대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부동산 PF가 급속히 증가했고, 2008년 우량저축은행이 부실저축은행을 인수ㆍ합병토록 장려하면서 썩은 알맹이 ‘솎아내기’에 실패합니다. 저축은행을 살려야 한다는 잘못된 지침 아래 감독반원이 눈을 감고, 이때 정경유착도 함께 일어납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가 눈을 감았을 때, 칼날은 결과적으로 서민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큰 그림을 배제한 채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내놓은 설익은 정책이 저축은행 업계의 속병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당시 여론이 분노했던 건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나 유착 공무원의 비리였지만,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야 했던 정책입안자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욕에 눈이 멀었던 이들은 감옥에 갔지만, 정책에 실패했던 이들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정책 실패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저축은행중앙회가 10일 창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축하의 말을 쉽게 건네기 어려운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1983년 249개였던 저축은행은 현재 91개까지 감소해 존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벼랑 끝에 몰린 저축은행을 개선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민금융의 큰 그림을 그리는 신중한 한 획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