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취업준비생인 A(28ㆍ여) 씨는 지난해 9월 절도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에 입건됐다. A 씨가 훔친 것은 8000원짜리 화장품 하나. 취업준비 등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물건을 훔친 것.
가게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쳤고, 주인 역시 그 모습에 더 이상 A 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건된 상황에서 꼼짝없이 전과가 남아 취업에도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걱정하던 A 씨에게 한번의 기회가 왔다.
바로 송파서에서 운영중인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서 A 씨의 사정과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이 고려돼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것이다.
법의 잣대로만 보면 범죄지만 순간의 작은 실수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기회를 줘 새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가 현재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시범 운영중이다.
경미범죄심사위원회(위원회)가 바로 그것.
기존 형사입건으로 처리되던 사건 중 피해정도가 경미한 사건을 즉결심판으로 회부해 피의자가 범죄자로 전락하지 않고 반성을 통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 제도는 지난 5월부터 운영돼 현재까지 총 5차례의 회의를 거쳐 26명중 21명에 대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다.
이전에는 즉결심판 예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34차례에 걸쳐 송파서에서 진행하던 제도가 그 효과를 인정받아 이름을 바꿔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 송파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생활안전과장, 수사과장, 형사과장, 청문감사관 등 경찰관계자에 변호사, 교수, 주부등으로 구성된 12명의 시민위원 중 매회 2명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매월 2회 각 과에서 형사입건된 사건 중 경미사건을 자체선정해 안건으로 상정하고, 즉결심판 및 통고처분 대상자 중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에 대해서 심사하고 있다.
회의는 사건 담당 경찰관과 함께 심사 대상자가 참석해 본인의 의견을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심사 결정은 심사위원 다수결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찬반 동수이거나 기타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심사위원장이 결정하도록 한다.
시민들은 한번의 실수로 지울 수 없는 전과를 기록하지 않게 돼 안도하는 반응이다. 경찰 측도 기계적 법적용이 아닌, 정황과 처지를 고려해 범죄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노력할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점에 보람차다는 반응이다.
한편 단순한 선처가 아닌,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위원회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도 냉정함과 공정성이다.
송파서 관계자는 “각 과에서 대상자를 선정할 때 범죄의 경미성 뿐만아니라 피의자의 가정환경, 선도여부 등을 꼼꼼히 따질 것을 주문한다”며 “따뜻한 감정과 함께 이성적 판단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 위원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엄정한 법집행이 경찰의 기본임무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법’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위원회를 거쳐간 사람들이 새 삶을 살며 자신이 받은 도움을 남에게 베풀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현재 송파서를 비롯해 전국 6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중인 위원회를 오는 10월까지 운영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