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지난 2000년 7월 25일은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김형경(44) 경사에게는 끔찍했던 날로 기억된다. 이날 낮 김 경사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에서 오토바이 순찰을 돌던 중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125cc 오토바이 운전자와 마주했다. 이 운전자는 김 경사를 보자마자 도주했고, 번호판이 달리지 않은 것을 본 김 경사는 오토바이를 뒤쫓았다. 몇분간 빠른 속도로 달리다 김 경사의 오토바이는 커브길에서 맨홀뚜껑에 미끄러져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잠시 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오토바이 옆면에 달린 날카롭고 두꺼운 파이프관이 오른쪽 다리를 관통한 것이었다.
다리 모든 조직을 들어내고 철심을 박는 9시간의 대수술 뒤 김 경사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후 10번의 재수술이 이어졌다. 수술 후에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고, 진통제를 하루에 7,8번을 맞아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어요. 너무 아파 온몸에 힘을 주다보니 근육이 경직되고, 잠은 거의 자지 못했죠. 고통을 잊기 위해서 매일 소주 2,3병을 마셔야 했어요. 고통을 끝내고 싶어 의사가 저를 죽여줬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3개월간 입원 뒤 퇴원하고 집에 갔을때는 죽으려고 목을 매기도 했죠.”
사실 김 경사에게 경찰은 오랜 꿈이었다. 스포츠센터 강사로 일하다 29세였던 1998년 말께 뒤늦게 경찰 공부에 뛰어들었다. 한살배기 첫째 아이를 보며 하루 16시간 넘게 공부를 해 9개월 만에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홍은 3동 파출소에 배정받아 경찰관으로 일하게 된 지 1년만에 다리를 잃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를 당한 뒤 폐인이 됐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하루는 집사람에게 ‘내가 이제 앞으로 회사 생활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집사람의 대답이 예상밖이었어요. 아내는 ‘우리 집안 식구 4명 내가 못 먹여살리겠어? 괜찮아 당신은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쉬는 게 당연해’라며 밝게 웃으면서 얘기했어요.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아내 김옥선(41) 씨의 헌신적인 태도에 용기를 얻은 김 경사는 2001년 12월경에 경찰서 생활안전과 사무실로 복귀했다. 일을 하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올때는 혼자 빈방에 들어가 다리를 주무르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12년이 지난 현재 은평구청 u-도시통합관제센터에서 파견 근무 중인 김 경사는 항상 밝게 웃으며 주변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됐다. 최근에는 경찰 수백명 앞에서 행복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저는 그때 사고로 건강을 잃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어요. 그전에 알지 못했던 가정의 소중함, 사소한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됐죠.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가족과의 외식이 큰 의미가 없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외식을 하는 것에서도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아내와 아이 둘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