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지방자치의 날…‘나 하나만 잘 지켜서 안전한가’라는 물음에…지역사회가 ‘풀뿌리치안’으로 답하다
영등포구 신길동 주부 김덕란씨 ‘여성귀가안심서비스’ 스카우트 요원 활약 옆집 딸도 내딸처럼 늦은밤 귀갓길 동행
종로구 삼청동 한현래씨는 ‘생명지킴이’ 몸 불편한 노인들과 말벗하며 병원 동행
흉물스런 시멘트 지하차도에 초대형 벽화 우범지대로 전락한 노후건축물 벽면 도색 지역주민들 재능기부도 잇따라
10월 29일은 제 1회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난해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지방자치의 날을 정한 이후 올해 1회를 맞았다. 각종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해마다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 자치구는 지역 특성과 현황을 고려한 범죄 예방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른바 ‘풀뿌리 치안’인 셈이다.
▶“위험한 동네 밤길 우리가 책임진다”=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주부 김덕란(55ㆍ여) 씨는 지난 5월부터 여성귀가안심서비스 스카우트 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 씨가 늦은 밤 여성들의 귀갓길을 책임지며 매일 밤 집을 나선 지도 벌써 100일이 넘었다.
그는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우고 있다. 딸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젊은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밤길을 다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가정주부인 김 씨가 주 5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1시까지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는 “‘고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민들이 있어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동네 치안을 위해 계속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에서 활동 중인 안심귀가 스카우트 요원은 40여명이다. 남성보다는 오히려 40~50대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호신술과 태권도를 배우고 이 지역 여성들의 밤길을 지키는 데 앞장선다. 이들이 착용한 노란색 모자와 조끼, 호루라기와 경광복은 어느새 밤길 지킴이의 대명사가 됐다.
김 씨는 “길을 지나가던 분이 늦은 시간까지 수고한다며 차를 한 잔씩 대접해주기도 한다. 그런 응원이 있어 추위와 더위로 힘이 들어도 방범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동참하는 방범서비스는 지역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안심귀가서비스의 경우 지난 6월 처음 시작할 땐 하루 1~2건의 신청뿐이었지만 지난달부터는 하루에만 50~60건의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의 직장인 이현미(32ㆍ가명ㆍ여) 씨는 “야근이 잦은 업무 특성상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다. 낯선 남자라도 따라오는 느낌이 들면 통화를 하는 척하거나 도망치듯 뛰어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이 씨의 귀갓길이 한결 편안해졌다. 회사앞에서부터 신길역까지 안심귀가 스카우트 요원과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스카우트 요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삶의 고민도 나눌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고 전했다.
▶“내 이웃 생명, 내가 지킨다”=서울 종로구 삼청동 통장인 한현래(56ㆍ여) 씨는 지난 6월부터 종로구 ‘생명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지역 내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한 이웃들을 주기적으로 찾아뵙고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은 물론 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병원을 가는 등의 봉사활동을 한다.
특히 홀로 살면서 외로움에 지쳐있는 어르신들은 한 씨의 방문을 가장 반기는 이웃 중 하나다.
한 씨는 “나도 언젠가는 이웃의 어르신들처럼 나이가 들 거라고 생각하면, 대가가 없어도 이런 봉사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씨와 같은 생명지킴이의 활동으로 종로구의 자살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지역 통장들이 생명지킴이 역할을 하며서 정신적ㆍ육체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들을 주기적으로 돌봐 지역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
그는 “막상 이웃들을 만나 보니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통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지역 이웃을 위해 ‘생명지킴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종로구는 이와 유사하게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자살의 예방을 위해 지역 청소년 100여명을 ‘생명존중 또래지킴이’로 위촉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종로구 관계자는 “종로구는 다른 지역보다 65세 이상 어르신 비율이 높은 편이라 어르신 자살 예방을 위한 대책으로 지난 2011년에 ‘종로구 자살 예방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면서 “생명지킴이나 또래지킴이는 내 이웃, 내 친구를 직접 돌본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주민 재능 기부로 우범지역 탈바꿈=지난 24일 서울 여의2교 지하차도에 지역주민과 인근 회사 직원 등 60~70여명의 봉사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파손된 시멘트로 흉물스럽게 변한 지하차도 벽면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였다. 여의 2교 지하차도는 주변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해 우범지대로 인식됐던 곳인 만큼, 이곳에 벽화를 그려 범죄 예방을 하자는 취지였다.
이들은 이날 높이 0.5~4m, 길이 120m 규모의 초대형 벽화를 그렸다. 기존의 어두웠던 분위기가 알록달록한 벽화로 거듭나면서 함께한 주민들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서울 성북구 역시 지난 9월 지역주민의 재능을 기부받아 길음 2동 신월곡 1구역의 노후 건축물 벽면을 도색했다. 지역의 방치된 공간이 쓰레기 투기지역이나 우범지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네 부녀회원, 미술동아리 회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동참해 골칫거리였던 장소를 그림이 있는 공간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결국 지역 전체가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인데, 최근 들어 이 법칙을 염두에 두고 범죄 예방 차원에서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벽화 그리기나 장미 담장 만들기 등의 노력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지역주민의 봉사와 참여가 큰 몫을 한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10월 초부터 벽화그리기를 준비해 왔는데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 달 만에 어두컴컴한 지하차도가 밝은 이미지로 재탄생했다”고 전했다.
황유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