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권리> 쉬고싶어도 쉬지못하는 직장인…

#1.대형 유통 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모(29) 씨는 지난 8월 입사 3년 만에 처음으로 3일의 여름휴가를 받았다. 첫 번째 휴가인 만큼 5일 정도는 다녀오고 싶었지만, 상사들의 눈치가 보여 그럴 수 없었다. 이미 한 동료가 5일 휴가를 다녀왔다 부장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은 후였다. 3일간 휴가를 다녀온 후 최근 3개월간 김 씨는 주말을 온전히 회사에 반납했다. 토요일 출근은 물론 팀 선배들은 예비군 훈련을 갈 때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2.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소재의 중소 IT업체에서 일하는 고모(27) 씨. 그는 최근 5년간 일한 회사에 지난달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 씨는 지난 2년간 총 열흘의 휴가를 썼다. 법정 휴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휴식이었다. 하지만 고 씨의 고민은 비단 휴가 부족만이 아니었다. 퇴근 후에도, 일요일에도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 때문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일요일에 친구들과 모처럼 만났을 때 상사에게 전화가 와 PC방에 가서 일을 하는 건 부지기수였고, ‘반강제적’으로 회사로 출근한 적도 많았다. 고 씨는 “느닷없이 토요일에 전화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보고하라고 하면 주말에 일하라는 거죠”라며 그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고 씨는 이번주 퇴사한 후에도 온전히 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회사 측이 이제서야 새로운 사람을 뽑고 있기 때문이다. 퇴사 후 새 직원에게 업무를 넘겨주기 위해서 다시 오라는 연락을 받을 것이 뻔하다. 고 씨는 “팀원들에게 화가 나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쉬지 못하는 직장인’의 신음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전형적인 ‘일 많이 하는’ 국가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22개국 직장인 8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연간 유급휴가 일수는 평균 10일로 22개국 중 가장 적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1년에 80% 이상을 출근할 경우 연차 유급휴가가 최소 15일 주어진다. 하지만 15일 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직장인은 찾기 힘들다.

직장인들이 이처럼 국가가 정한 ‘쉴 권리’를 챙기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 기업 중에는 명절 연휴 6일과 3ㆍ1절, 광복절 등 국가 공휴일을 15일 연차 휴가에서 자동차감하는 경우가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2년 기업체 노동비용조사 근로시간 시범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29인, 30~99인, 100~299인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소진한 연차휴가 사용비중은 각각 59.7%, 56.1%, 54.4%로 300~499인(50.3%). 500~999인(51.3%), 1000인 이상(48.3%) 등 대기업 사업장에서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중소ㆍ중견기업이 대기업보다 휴가를 많이 줬기 때문이 아니었다. 중소기업들이 설날, 추석, 3ㆍ1절, 광복절,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일명 ‘빨간날’로 불리는 공휴일을 근로자 연차휴가일로 정한 탓이었다.

중소기업의 경우 과도한 업무를 주고 휴일을 반납하게 하지만, 대기업은 선배들의 눈치 때문에 엄연히 주어진 휴가를 쓰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일부 기업의 신입사원들은 휴가에 근무하는 사유를 제출하는 게 아니라, 휴가에 근무하지 않는 사유를 제출하라는 규칙에 무릎을 꿇고 휴일을 ‘자진납세’한다. 또 야간당직을 한 후 당직수당을 받을 때도 의무적으로 지급받는 게 아니라 신청해야만 주는 회사도 많다. 대기업 계열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안모(28ㆍ여) 씨는 “임원들은 야간수당을 신청하면 퇴근하라고 지시하는데, 밀린 업무가 너무 많아 퇴근할 수 없다”며 “사내에서 수당을 받지 않고 야간 업무를 하는 게 관습처럼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의 업무 효율은 어떨까. OECD 경제정책개혁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시간은 가장 길지만 생산성에 있어서 회원 34개국 가운데 28위로 하위권이다. 오래 일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서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