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생생뉴스]항일투쟁의 전설인 여천(汝天) 홍범도(洪範圖ㆍ1868∼1943) 장군의 서거 70주기 추모식이 2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엄수됐다.
알마티 외곽 고려극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이종찬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계 니콜라이 주카자흐 고려인 독립유공자후손회 회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장군의 뜻을 기렸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종찬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 하층민이었지만, 조국이 외세에 침탈당할 때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며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계 니콜라이 회장도 “카자흐 현지에서 처음으로 열린 홍범도 장군의 추모식은 그 의미가 크다”며 “한국정부가 앞으로도 고려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쏟아 행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서는 한국 대표단과 현지 고려인 학자들이 장군에 대한 학술회의도 가졌다. 더불어 고려극장 단원들은 홍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홍범도’를 공연했다.
연극 ‘홍범도’는 옛소련 시절 국민작가였던 태장춘 선생의 원작으로 1942년 홍범도 장군 앞에서 공연 후 71년만에 복원 작업을 거쳐 무대에 올려졌다.
26일에는 한국과 고려인 대표단이 함께 카자흐 크즐오르다에 있는 장군의 묘를 참배하고 다시 한번 고인의 업적을 기린다.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천민계급 출신이다. 조실부모한 그는 15세까지 이웃마을 지주 집에서 꼴머슴살이를 했다.
사회로부터 혜택은 커녕 차별과 수탈을 강요당한 신분이었지만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의병투쟁에 몸을 던졌다.
사격 실력이 발군이었던 홍범도는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 일본군을 토벌했다.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려움의 존재였고, 민중에게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전설이 나돌 만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도 그의 주도로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로 떠나온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현지에서 서거했다.
홍범도 장군은 항일투쟁의 전설이었지만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한 남한에서는 레닌으로부터 이름이 새겨진 권총과 돈을 받았고 볼셰비키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됐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나 옛 소련에서는 그가 공산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했다는 논리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 탓에 항일 무장투쟁에서 첫손에 꼽히는 홍범도 장군은 서거 70주년이 가까워지도록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군’이 돼버렸다. 카자흐 현지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장군의 추모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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