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람이 있다. 양팔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상념에 빠진 검은 남자다. 그 남자 뒤로, 두 사람이 서 있다. 모두 어둡고, 말이 없다. 이 침잠하는 듯한 청동 조각을 만든 이는 배형경(58)이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온 배형경은 지난 30여년간 일관되게 구상조각을 고집해왔다. 세련된 미니멀리즘이며 미디어아트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음에도 그는 가장 클래식한 인체조각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탐구한다. 그의 묵직한 표현주의적 인물 조각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내면 깊은 곳의 외침을 드러낸다. 무표정한 침묵 이면에는 치열한 감성이 숨겨져 있는 것. 작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존재의 어려움에 대해 표현하다 보니 어두운 청동조각을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배형경의 조각은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오는 12월 6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