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56)가 웃었다.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 소를 닮은 착한 눈빛에 걸린 웃음이 왠지 서늘하다. 영화 ‘공범’(감독 국동석)을 말하라면, 감히 이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공소시효를 며칠 안 남긴 15년전 아동납치살해사건. 미제사건을 극화한 영화를 본 딸(손예진 분)이 작품 속에 삽입된 당시 범인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던 아빠가 아동 살해범이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의심은 파문처럼 걷잡을 수 없고, 마침내 딸과 아버지의 심장을 움켜쥔다. 잔인하기조차 한 의심으로 가득한 딸의 눈빛을 묵묵히 받아내던 아버지가 결국은 웃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웃음일까, 살인자의 웃음일까. 배우 김갑수의 얼굴 안에서 명암과 희비극이 교차한다. 영화를 제작한 박진표 감독(‘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은 “손예진이 짐승같은 본능의 배우라면 김갑수는 허허실실하다가 카메라가 돌면 사냥꾼으로 돌변하는 배우”라고 했다. “원 샷 원 킬의 사냥꾼” 말이다.

“영화 내내 자신을 의심하는 딸에게 결백을 호소하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태도로만 임하면 관객이 재미없죠. 딸의 의심이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순간 순간 드러내야 했죠. 과도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말이죠. 쉽지 않은 표현이었죠.”

배우 김갑수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배우 김갑수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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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배우 김갑수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김갑수는 예의 낮지만 결기어린 목소리로 “(손)예진이와 정말 호흡을 잘 맞췄다”며 “‘공범’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의심’을 두고 펼쳐지는 두 배우의 호흡과 감정의 너울이 작품의 빈틈을 채우고도 남는다.

“근래의 영화를 보면 자극과 액션이 강한 작품이 많았죠. 제가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없었어요. 저는 더 인간적인 감성과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제 나이가 있으니까, 들어오는 역할이 조폭 보스나 재벌 회장, 막후의 실력자같은 게 많았어요. 썩 내키지 않았죠. 그러던 차에 ‘공범’의 시나리오를 만난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후 3년만의 영화 출연.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랜만의 영화로 만난 김갑수는 사람좋은 웃음과 유쾌한 농담, 그리고 감각적인 패션이 여전했다. 십수년전 드라마 ‘태조왕건’으로 유명세를 떨칠 무렵, 동명이인인 시인 김갑수가 지칭한 ‘된장찌개 냄새와 머슴 이미지가 퐁퐁 풍기는 배우’는 자취가 없고, 서울 삼청동의 가을, 그리고 그 속의 젊은이들과 썩 잘 어울리는 ‘세련된 감각의 젊은 형님’이 앉아 있었다.

“난 아직도 애죠. 고등학생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도 세상이 참 신기하고 궁금하니까요. 학교만 벗어나면 술도 마셔보고, 수염도 길러보고, 옷도 마음대로 입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뭔가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등학생의 마음이죠. 젊은 친구들 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왜 저렇게 행동할까 늘 궁금해요. 새롭게 차려입은 젊은 친구들을 보면 저 옷은 어디서 샀나 물어보고 싶다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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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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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배우 김갑수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77년 연극 무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연기를 시작해 벌써 36년이다. 무대와 TV, 스크린에서 오롯이 깁갑수만의 성을 지어올렸고, 몇 년전부터는 TV의 예능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목소리, 그리고 인터넷, SNS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아이콘’이 돼 왔다. 연극배우 시절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빼곡하게 메모를 했다. 하지만 연기세계가 숙성해갈수록 대본과 시나리오는 점점 깨끗해져갔다. 이제는 한번 읽고, 다음은 몸과 머리로 끊임없이 상상하고 사유하며 인물을 완성해가기 때문이다.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나 장르로의 ‘외도’는 여전히 솟구쳐 오르는 흥미와 호기심때문이다. 몇 년전부터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이유도 있다.

”배우로서 대중이 인정할 정도가 돼야 소통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무슨 내세울 것이 있겠습니까. 일찍부터 팬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지만 참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팬들이 저를 알아봐준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연기는 늘 즐거움이고 행복의 원천이었지만, 1년여전에는 연기 때문에 심하게 마음앓이를 했다.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을까, 그냥 평범하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회의가 문득 찾아왔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힘들다’고 한숨을 쉬곤 했다. 가을의 짧은 우울증처럼 훅 바람이 불었다 갔다.

배우 김갑수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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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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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배우 김갑수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10.22

“예전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오면 연기라고 했죠. 지금은 가족이라고 답합니다. 이제 다른 일이나 장르는 줄이고 연기에 중심을 놓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낼 생각입니다.”

3년전 출연한 ‘무릎팍도사’에서 에미넴과 50센트를 좋아한다고 해 화제가 됐는데, 요새는 한국의 언더 힙합신에 대해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단다. 과연 김갑수, 숙성할수록 젊어지는, 멋을 아는 배우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