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기획취재팀]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경평)에서 기관들이 말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획일적인 평가 기준과 항목’이다. 기관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잣대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옷에다 몸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정부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공공기관 정책을 총괄하는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경평이 기관의 개별적 성격이나 업무특성을 반영하는 데 있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 부담이 과다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불신에 이어 무용론까지= 본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경평에 대한 공공기관의 불신과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기관 평가에 만족한다’, ‘평가 방식ㆍ기준ㆍ항목이 적절하다’ 응답은 불만족과 부적절 답변을 밑돌았다. 특히 ‘경평이 기관의 업무 특성이나 설립목적을 제대로 평가하나’ 물음에 68곳 중 32곳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가장 개선돼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는 ‘획일적인 평가기준과 항목’(69곳 중 34곳)이란 응답이 절반에 가까웠다. 이어 ▷객관적이지 못한 비계량 평가 16곳 ▷자주 바뀌는 경평 지표와 공공기관 분류 체계 7곳 ▷정부실패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는 평가 6곳 ▷정권에 좌우되는 평가 결과 4곳 등의 순이었다. 또 경영평가단에 대해 강소형 준정부기관 3곳 중 2곳에 가까운 64.3%가 ‘전문성이 없다’고 응답했다. 전체 평균(41.4%)을 크게 웃돌았다.

‘경평이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공공성 강화에 도움이 되나’ 설문에서 70곳 중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 24곳, ‘보통’ 28곳,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 18곳으로 조사됐다. 긍정적인 답변은 34.3%로,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평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A기관(기금관리형)의 경평 담당자는 “공공기관은 대(對) 국민 서비스 증진을 위해 자율적 경영을 할 수 있게 하고,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자율경영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는 꼭두각시 상황에서 평가로 다시 매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혹평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다”= B기관(강소형) 경평 담당자는 “같은 항목에서 해마다 비슷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 평가위원에 따라 매년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금관리형 공공기관 최고경영자는 “첫해 평가위원이 특정 분야의 관리방식을 바꾸라고 해서 바꿨는데, 다음해 다른 평가위원이 ‘왜 바꿨느냐’고 말하더라”고 지적했다.

금융공공기관은 경기 상황을 감안해 달라고 호소한다. 한 금융공공기관 관계자는 “성격, 규모, 목적이 서로 다른 공공기관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금융기관은 경기의 변동에 큰 영항을 받는다. 이런 특징을 (정부가) 평가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에너지 공기업들은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기 손익보다 장기적 관점의 사업성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강소형 준정부기관은 경영효율지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다. 경평은 ▷리더십ㆍ책임경영 ▷경영효율 ▷주요 사업 3개로 크게 구분된다. 리더십ㆍ책임경영 분야는 계량ㆍ비계량 평가가 혼재하며, 경영효율 분야는 계량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C기관(강소형) 관계자는 “사업지표는 기관별 수행하는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큰 변별력 없다. 문제는 경영효율지표인데, 사실상 해당 기관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것이어서 공익적 성격이 강한 기관의 지표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소규모 기관의 경평 담당자는 “우리 같이 작은 곳은 사실 정부가 예산을 다 짜주고 남은 것은 돌려줘야 한다. 정부가 전권을 쥐고 있는데 사회공헌이나 중소기업 협력 사업 등을 요구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평가를 위한 평가?= D기관(강소형) 경평 담당자는 “임직원들이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장기적인 사업보다 단기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연연하게 된다”고 했고, E기관(강소형) 관계자는 “경평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나. 공공기관은 점수를 따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경평의 목적인 효율성과 공공성 강화는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우리의 개도국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데, 실적을 맞추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실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 관계자는 “경평이라도 해야지 공공기관의 효율성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면서 “학생은 시험을 봐야 공부를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는 탈락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을 문제로 내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F기관(기금관리형) 관계자는 “평가를 단순화해서 인력과 자원이 낭비되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큰 공공기관의 경우 수십명이 두세달씩 경평 자료 작성에 매달리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