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정식 기자]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은 지난 8월 청와대에 경영평가(경평)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제고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KTL은 지난 6월 발표된 지난해 경평에서 기관장과 기관 모두 ‘D등급’을 받았다. 사실상 낙제점을 받은 주 요인은 정규직 345명에 비정규직은 350명에 달하는 인력 구조때문이었다. 겉만 보면 정규직은 늘리지 않고 싼 인건비의 비정규직만 채용한 KTL에게 마땅한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남궁민 KTL 원장은 “우리 기업들의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매년 평균 업무량이 13%씩 늘어나 정규직을 더 뽑고 싶었지만 정규직원 수가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늘렸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비정규직이라도 늘려 기업들의 수출에 도움을 주면서 자체 수익도 늘어나 재정 자립도를 높였으며,부수적으로 새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평가 과정에서 이의 제기 제도가 제대로 있었다면 이같은 비상식적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 원장은 경평 결과가 발표된 뒤 기획재정부 담당부서를 수차례 찾아가 이의를 제기했으며 반영되지 않자 공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경평은 6월 발표에 앞서 5월쯤 각 기관에 중간평가 결과가 통보된다. 공식적으로는 이를 받아보고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되레 문제 기관으로 ‘찍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 경평담당 본부장은 “최종 결과 전 이의신청 기간에 실무적으로는 사실상 오탈자를 고치는 정도의 절차이지 평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고 말했다. 이의신청을 하면 심사나 수용 여부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고 신청자에게 결과 통보도 없다. 이의제기 기관 입장에선 ‘대답없는 메아리’로 느낄 수밖에 없다. 중간평가 결과에 심각한 오류가 있더라도 벙어리 냉가슴이다.
이런 와중에 이의 신청이 실무적 재검토보다 공기업 기관장이 정치적 영향력를 뽐내는데 더 활용된다는 지적도 많다. 중간결과가 마지막에 확 바뀌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고위 관료나 정치인 출신 기관장이 ‘힘’을 쓴 경우가 많다는 게 실무자들의 하소연이다.
지난 9월 초 경기 안산의 한 연수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모여 제도개선 방안 세미나를 가졌다. 한 참석자는 “많은 기관들이 평가단의 비전문성과 지나치게 획일적인 기준으로 성격이 전혀 다른 기관들을 일괄 평가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의 신청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한번 내려진 평가 결과를 수정하는 것은 정부로서 큰 부담이다. 공공기관들은 정부 부처의 산하기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