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 다섯살, TV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아역으로 수많은 누나와 이모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추첨으로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 이벤트 자리에서 한참 누나뻘인 여성팬이 그러더란다. 이름을 아예 ‘여진구오빠’로 바꿔달라고. 한창 어린 막내동생뻘의 스타 보고 ‘오빠’라고 부르기 민망하니, 아예 호칭을 이름으로 붙여달라고 주문하더란다. ‘해품달’에서 이훤의 성인 역 김수현도 대단했지만, 여진구의 연기도 ‘아역’이라고 부르기만은 무색할 정도로 강렬했다.
1년여전보다 키도 5㎝쯤 더 크고, 목소리도 한층 굵어졌다. 어느새 청년의 느낌이 물씬하다. 중학생에서 고교생으로 교복도 바꿔입었다. 여진구(16)가 스크린에선 처음으로 주연이자 타이틀롤을 맡은 새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감독 장준환)가 9일 개봉했다.
“시나리오 처음 읽었을 때 ‘다섯 범죄자인 아빠들에 의해 길러진 아이’라는 설정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촬영현장에서 제가 ‘화이’라는 아이를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감독님도 화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소년이라고 했어요. 같은 장면을 슬픔으로도, 분노로도 다양한 감정으로 찍어봤죠. 총을 잡고 있을 때도 아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 수도 있고, 총을 내려놓아도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을 수도 있는 아이입니다. 감정선이 타고 가기가 어려웠죠.”
말하는 폼새가 의젓하고, 표현이 명민하다. 개봉을 앞두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진구는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정한 소감부터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의 진폭을 거쳐, 모든 것을 마친 후의 여운까지 머리와 심장이 타고 너울졌던 흐름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냈다.
“범죄자들에 의해 키워졌지만 악에 물들어 있지 않은 아이였습니다. 총을 쏘고 악행에 동참하는 것은 그저 아빠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죠. 극중 다섯 아빠들에 대한 제 나름의 연구를 해서, 각 인물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하려고 했어요. 저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은 소년이에요. 그래서 현장에서 연기하면서도 저 멀리 떨어진 한 구석에선 또다른 나, 또다른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화이’는 어린 시절 납치돼 5명의 흉악 범죄자들에게 ‘아들’로 길러진 고교생 소년의 이야기다. ‘아빠들’은 악행의 기술과 악마의 혼을 아들에게 심어주려고 하고, 소년은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괴물의 본성과 천성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길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화 속에서 소년이 환상을 통해 보는 괴물은 인간 내면의 악마적 본성에 대한 상징이다.
“괴물에 대해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죠. 화이가 성장하면서 같이 커져가는 존재가 아닐까하고 말씀해주시더군요. 분노와 슬픔, 죄책감 등 뭔지 모를 감정이 섞여서 만들어진 화이의 이면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할수록 이해될 때도 있었고, 혼란에 빠질 때도 있었어요.”
16살의 배우 여진구와 16살 소년 ‘화이’가 만나 일으키는 불꽃이 스크린에서 거세게 타오른다. 나이만으로는 제한할 수 없는 본능적 감각과 사고의 깊이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래도 카메라가 멈추면 여진구는 밝고 명랑한 고교생이다.
“장난을 좋아해서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많아요. 농구, 축구, 수영같은 운동도 모두 좋아하구요. 한 가지 일을 하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연기말고는 길게 하는 것이 없어요. 중학교 때는 벼락치기가 통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더 이상 안 돼요.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얼마전에 시험기간이 끝났는데, 시험지 받아보니 아예 손도 못 대는 문제가 많더라구요. ‘멘붕’이었죠.”
가능하다면 대학은 심리학 전공같은 연기 외의 학과로 진학하고 싶지만, 앞으로 성적 올릴 일이 걱정이란다. 유학도 가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지만, 단 하나의 목표는 뚜렷하다.
“연구를 많이 해서 진심을 담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인물을 보여주는 연기요.”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