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 사업 망한 고민중 처가살이 시작 구박만 받던 허세달과 위상 역전 이앙금 여사의 막장(?)장모 눈길
‘처월드’의 과도기적 드라마 시월드 해법 제시한 ‘넝굴당’ 됐으면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시집살이다. 시집살이가 갈등의 큰 축이었던 만큼 며느리를 괴롭히는 막장 시어머니를 양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막장 시어머니는 갈등의 전위대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박원숙은 그렇게 해서 부각된 ‘막장 시어머니의 갑(甲)’이었다. ‘백년의 유산’에서 박원숙은 며느리 유진을 아들과 떼어놓고 위자료를 주지 않으려고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요즘은 ‘시월드’가 아닌 ‘처월드’를 그리는 드라마나 예능도 늘었다. KBS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이 대표적이다. 여기도 막장(?) 장모 이앙금(김해숙)이 등장한다. 맏사위 고민중(조성하)은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해 처가살이를 시작하면서 장모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돌변하자 어리둥절할 것이다. 철없고 지질한 행동으로 장모의 구박을 받아온 둘째 사위 허세달(오만석)은 스폰서로부터 받은 1억원짜리 카드로 오랜만에 사위 노릇을 하게 돼 장모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장모는 ‘우리 고서방’에서 ‘우리 허서방’으로 말을 갈아탔다. 일단 두 사위는 처가에서 위상이 역전됐다.
물론 시댁보다 처가가 더 가까워지고 자녀를 처가에서 양육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고부갈등’ 못지않게 ‘장서(丈壻ㆍ장모 사위) 갈등’도 생기는 상황에서 드라마나 예능이 이런 현상을 담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는 ‘백년손님 자기야’로 포맷을 바꿔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연자 중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은 장모와의 적극적 소통을 보여줘 ‘국민사위’가 됐다. 장모에게 반말을 하고 게임을 해서 장모의 이마에다 세게 딱밤을 때린다. 장모와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는 게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 시대상황을 가장 빨리 읽고, 강하게 실행하는 이 사람이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왕가네 식구들’ 속 고민중의 처가살이는 시월드 속 며느리보다 더 안쓰러워 보인다. 시월드보다 더한 고민중의 처월드에 시청자들은 “힘내요, 민중 씨”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실 이앙금 여사를 ‘막장 장모’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위와 딸을 최고라고 말하는 이앙금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평범한 속물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엄마상을 미리 정해놓고 희생을 강요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상한 엄마’고, ‘이상한 장모’다.
자식이 성장하면 모두 각자의 삶을 살 수 있어야 독립적이라 할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시월드’에서 핵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핵월드’로 넘어가야 하는데 ‘처월드’가 기다리고 있다. 고민중의 사업이 망해 반지하 단칸방에 살게 되자 이를 못 견디고 엄마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 큰딸 왕수박(오현경)이다. 이미 두 딸인 애지, 중지는 엄마 집에 맡겨졌다.
죽어라 시집살이를 해온 이앙금은 60대가 되고도 시어머니와 백수 시동생을 모시고 살고 있고, 큰딸 부부, 손녀까지 맡게 됐다. 편하게 쉬어야 할 나이에 팍팍한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큰딸을 편애하게 됐을 것이다.
이런 구조라면 가족극이 유난히 강한 한국 드라마에서 독한 막장 시어머니가 실제 이상으로 양산되듯, 얼마든지 막장 장모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막장 장모를 내세워 시청률 상승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처월드’에서 사위 고민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은 같은 남자인 장인 왕봉(장용)이다. 가슴에 울음이 꽉 차있는데 못 울어서 속이 막힌 사위가 장인 앞에서 어린이처럼 드러누워 울부짖는 모습은 낯설기는 하지만 그나마 처월드의 숨통을 트여주는 요소다.
이제 사위가 백년손님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그동안 시월드에서 당한 며느리의 모습을 혹독한 처월드를 살아가는 사위의 모습으로 치환해 통쾌함을 주려는 모습으로만 극을 풀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왕가네의 가훈은 역지사지다. 입장이 바뀐 사위들의 이야기가 공감이 가고 지혜롭고 세련된 솔루션이 제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월드’의 명쾌한 해법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제시됐다. ‘처월드’의 과도기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왕가네 가족들’에서는 ‘처월드’의 중심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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