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ㆍ정태일ㆍ김상수ㆍ박수진 기자]경제민주화 시대 파고 속에서 오너십 부재, 업황 악화, 사상 최대 자금난으로 힘든 재계 앞에 ‘국감 포비아(phobiaㆍ공포증)’라는 또다른 대형 악재가 놓이게 됐다. 여야가 국감 일정에 합의하고, 각 상임위가 증인 채택을 협의하면서 일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 잘못 의혹이 있는 기업 CEO가 국감장에 소환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국회의 ‘묻지마 증인 소환’ 움직임에 기업들이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할 상황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여소야대’ 환노위에서 줄줄이 증인 소환 신청에 나섰던 것 이상으로, 올해는 경제민주화 흐름에 편승해 더 무조건적인 무더기 증인 신청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더해지면서 기업들은 벌벌 떨고 있다.
10대그룹 임원은 “올해 상임위의 국감 증인 신청은 예전보다 더 파상공세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며 “재계로선 국감의 정치적 쇼를 자제하고, ‘제발 일하는 데만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읍소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타깃 기업 ‘벌벌벌~’=올해는 무더기 국감 증인 신청이 예고돼 있다.
국회 환노위, 정무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KT 등의 대표 등이 주요 타깃으로 거론된다.
위장 도급 논란이 일었던 삼성전자서비스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아예 삼성과 삼성전자의 불산사고와 관련해 권오현 대표를 증인 채택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속적인 하도급 논란이 있는 현대차그룹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노사를 담당하는 윤여철 부회장이 증인 신청 가시권에 들어있다는 관측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해서는 삼성에버랜드, 현대글로비스 등의 CEO가 증인 신청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정거래 이행실적 허위보고 건으로 포스코 역시 상임위 증인 협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올해는 특히 유해화학물질법과 관련한 증인 채택이 도마위에 오를 확률이 높다. 불산누출 사고의 삼성전자, LG실트론과 공장폭발의 대림산업 등 CEO가 거론된다.
한참 말이 많았었던 갑을관계법과 관련해선 대리점 제품 밀어내기로 물의를 빚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의 증인 채택도 유력시된다. 특히 민주당은 “국순당의 불공정 행위를 국감에서 깊이 다루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통신업계에서는 노무 관리 문제 등으로 도마위에 오른 이석채 KT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 여부가 초미 관심사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민주당 노웅래, 유승희 의원 등이 이 회장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 “국정감사가 기업감사 돼선 안된다”=이같은 국회의 증인 신청 추진에 전방위 레이더에 걸린 기업들은 초긴장 분위기다. CEO 행보와 경영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기에, 미리부터 CEO ‘스크린’에 나서면서 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예년처럼 기업감사가 돼선 안된다”며 “오너들은 대거 법의 심판을 받고,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위기의 업황은 여전히 위기인 3대악재를 맞고 있는 기업에 국감이 또다른 복병이 돼선 곤란하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 국감 증인 여부에 입에 오르고, 씨름을 하다보면 경영 동력이 상실되고 나아가 해외신뢰도에서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CEO가 국감장에 나가 국회의원의 윽박지름과 호통의 개인적 수난을 당하는 것을 떠나, 기업 경영 전체에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이 당장의 경영 현안보다는 증인 채택 피하기에 열중할 수 없는 분위기에 빠져든 것과 무관치 않다.
올해 국감이 기업으로선 ‘패닉’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은 기업들의 대국회업무(대관업무)가 원활치 못한 상황과 관련이 크다. 강경 초선 의원들이 상임위를 장악하면서 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보좌관 만나기도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며 “로비를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대화채널도 막혀 있어 업무상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