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예방접종 후 장애를 얻은 이들에 대해 장애보상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는 판결이 연달아 나왔다. 법원은 예방접종과 장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은 물론이고, 법률상 장애보상금을 청구할 근거가 없더라도 법의 목적과 도입 취지 등을 고려해 보상금을 줘야 한다고 판단해, 피해 인정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는 추세다.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 최규홍)는 생후 7개월 되던 때에 예방접종을 맞았다가 간질을 앓게 된 홍모 군이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낸 예방접종으로 인한 장애 인정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의 항소심에서 지난 20일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홍 군은 지난 1998년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맞았다가 다음날 경련 등 복합부분발작 장애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고,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피해보상액 24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홍 군의 증상은 계속 악화됐고 결국 장애등급 1급 판정까지 받았다. 홍 군의 부모는 질병관리본부에 장애보상금을 신청했지만 “간질과 백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해당 백신과 영구적인 간질 증상이 서로 관련돼 있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홍군의 이상증상이 발생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며 “예방접종 다음날부터 간질 증상 등으로 치료를 받다 후유장애로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하면 둘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예방접종 후 얻은 장애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인정받은 첫 사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법률상 ‘장애’에 포함되지 않은 증상에 대해서도 장애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진창수)는 예방접종을 맞은 후 기면증에 걸린 이모(30) 씨가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낸 장애일시보상금 부지급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씨는 2010년 11월 독감 예방접종을 맞은 이후 낮에도 계속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졸음운전으로 수차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 씨는 이듬해 기면증 진단을 받은데 이어 지난해 5월에는 졸음으로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고 보호자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사유로 후유장해진단을 받고 “예방접종으로 인해 기면증이 발병했다”며 질병관리본부에 장애일시보상금을 신청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진료비와 간병비 680만원을 지급했지만 장애보상금 지급은 끝내 거부했다.
감염병예방관리법은 예방접종으로 장애인이 되면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장애등급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기면증의 경우 장애등급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면증이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장애등급에는 포함되지 않아 일시보상금을 청구할 법률적 근거가 없지만 감염병예방관리법의 목적이나 피해보상규정을 도입한 취지 등을 고려할 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염병예방관리법 시행령이 예방접종으로 후유장애를 입은 사람을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장애등급 요건을 갖춘 경우로만 한정한 것은 법의 위임취지에 반하고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