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토르’의 영화 나이. 극장 데뷔 2011년. 출판 데뷔 1962년

900만명 ‘아이언맨3’의 한국 관객수. 슈퍼히어로 영화 중 역대 1위

15억$ ‘어벤져스’의 세계 흥행수입. 약 1조 6300억원

‘슈퍼히어로’라고 할 때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을 당장 떠올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소 30대 중후반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철갑옷 입은 아이언맨과 망치 휘두르는 토르, 방패를 든 캡틴 아메리카가가 먼저 생각난다면 십중팔구는 많아야 20대 이하의 젊은이일 것이다.

초인적 능력을 갖고 악의 무리와 싸우는 영화나 만화 주인공을 뜻하는 ‘슈퍼히어로’가 국내 극장가에서도 ‘세대교체’를 했다. 관객들의 세대 변화와 더불어 인기 슈퍼히어로 캐릭터들도 ‘물갈이’가 됐다. 미국 굴지의 출판만화사이자 슈퍼히어로의 산실인 ‘마블코믹스’가 월트디즈니와 손을 잡고 영화 제작의 전면에 나선 이후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의 흥행전략이 한국 시장에서도 직접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슈퍼맨·스파이더맨 떠올리면 30대 중후반 이상 세대교체의 기점은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다. ‘아이언맨’은 2010년 1편이 나오기 전에는 국내 관객 대부분에겐 생소한 슈퍼히어로였다. 뒤이어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는 ‘마블코믹스’가 1930년대부터 단행본이나 잡지 형태의 출판만화를 통해 내놓은 주요 슈퍼히어로를 대거 출동시킨 영화로, 헐크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호크 아이, 토르가 한꺼번에 등장해 팀을 이루거나 대적했다. 1980년대 국내에도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TV시리즈의 주인공 헐크를 제외하면 국내 관객들에겐 대부분 낯선 존재들이었다. ‘어벤져스’의 프롤로그 격인 작품이 2011년 개봉한 ‘퍼스트 어벤져’로 미국 개봉 원제는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였는데, 한국에선 생소해 아예 주인공의 이름을 빼 버릴 정도였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관객 51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반면 ‘어벤져스’는 지난해 707만명을 동원하며 한국 개봉 슈퍼히어로 영화 중 역대 2위의 큰 성공을 거뒀다. 그 견인차는 ‘아이언맨’이었다. 지난 2008년과 2010년 개봉한 1, 2편이 각각 400만명 이상을 동원해 ‘어벤져스’에선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스타였다.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다. 지난 4월 제 3편이 개봉해 전작 두 편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9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최근 개봉한 ‘토르:다크월드’도 큰 덕을 봤다. 1편은 169만명에 그쳤지만, 두 번째 작품은 벌써 200만명을 넘겼으니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 후속편 역시 본명을 되찾고 ‘어벤져스’의 후광을 누리겠다고 나섰다. 내년 3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개봉 예정이다. 아이언맨이 토르를 돕고, 토르가 캡틴 아메리카를 지원하는 ‘상호 부조’인 셈이다.

이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 TV 시리즈에서 얻은 유명세에 기반했던 전 세대 슈퍼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흥행 전략이다.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은 비(非)미국 지역에선 출판만화보다는 아동용 TV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시리즈로 지금 30~40대에게 익숙한 주인공들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극장 영화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이언맨 흥행 힘입어‘어벤져스’관객동원 2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대중문화의 주요 슈퍼히어로들은 1930년대로부터 1960년대까지 출판만화를 통해 태어났다. 특히 미국 출판만화의 ‘황금시대’로 일컬어지는 1940년대부터 슈퍼히어로물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서 주인공의 탄생기와 출세기에는 제2차 대전과 냉전시대가 뚜렷하게 반영됐다. 1978년의 기념비적 작품인 ‘슈퍼맨’으로 시작된 슈퍼히어로 무비 역시 미국 우월주의와 동서 진영 대결의 논리가 짙게 배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헐크 등은 모두 어린 시절의 충격적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무비에선 유년기의 상처를 극복하는 성장담과 인류 구원의 모험담이 겹쳐진다.

하지만 최근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과거의 고뇌로부터 결별했다. ‘어벤져스’의 영웅들은 시대적 책무나 탄생의 기원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간단히 뛰어넘어 버리고 오로지 농담과 유머, 활극의 쾌감에만 집중했다. ‘어벤져스’는 실로 시간과 공간, 텍스트의 ‘혼성’ 시대에 태어난, 완전히 21세기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슈퍼히어로 오락 영화였다. 나치 시대에 태어난 미국의 수호영웅 캡틴 아메리카, 핵과 유전자 개발 시대에 만들어진 돌연변이 헐크, 첨단 로봇시대의 천재 과학자이자 군수기업 회장인 아이언맨을 거쳐 북유럽의 신화 세계로부터 할리우드로 뛰어든 ‘토르’에 이르면 미국 대중문화의 놀라운 식욕과 소화력에 가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영웅 캐릭터 젊어지고 단순·쾌활·과격해져 특히 ‘아이언맨’의 경우엔 주색잡기에 능한 ‘한량’이자 세계 최고 부자, 천재적인 두뇌의 과학자라는 점에서 과거의 슈퍼히어로상과는 전혀 달랐다.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단순하고 무식하며 다혈질이고 대식가인 신에서 따온 캐릭터다. ‘묠니르’로 불리는 망치가 그의 무기로,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며 상대가 누구든 한방에 쓰러뜨리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영화 속에선 토르뿐 아니라 오딘과 로키 등 주요 신의 이름, 아스가르트와 미트가르트, 바네하임, 요툰하임 등의 아홉 세계를 이르는 명칭 등을 북유럽의 신화로부터 직접 가져왔으며, 각 관계와 내용은 할리우드식으로 적당히 가공했다. 요상한 단어들의 후광을 걷어내면 권선징악의 단순한 세계관과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를 담은 판타지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농담과 유머 감각은 인정할 만하고, 굉음의 사운드와 컴퓨터그래픽이 창조한 액션이 주는 쾌감은 상당하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할리우드의 박스오피스도 변화시켰다.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 중 전 세계 수입 1위는 ‘어벤져스’로 총 15억1800만달러(1조6288억원)를 벌어들였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