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올해와 같은 갑오년(甲午年)인 1894년,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핑계로 한반도에 군대를 보낸 청나라와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전장 삼아 이른바 청일 전쟁을 벌였다. 그야말로 국운이 백척간두에 섰지만 자신의 땅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을 막을 수 없었던 힘없는 조선은 어느 나라의 편에 서야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지 눈치작전만 벌이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넘겨야 했다. 다음 갑오년인 1954년, 한반도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본격 냉전의 시기에 돌입했다. 이후 한반도는 미(美)ㆍ소(蘇) 양 슈퍼파워가 자존심과 파워를 겨루는 대결의 첨병에 서야 했다.
청일 전쟁 이후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두번이나 지난 2014년, 한반도를 둘러싼 미ㆍ중 양 강대국의 경쟁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의 외교에 험난한 한 해를 예고 하고 있다.
▶G2의 경쟁 본격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라”=가장 큰 위기의 근원지는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표면화되고 있는 동북아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기존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약화와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 패권국 중국의 부상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집권 2기를 맞은 오바마 미 행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료하고 다시 아시아에 주목하면서 최근 아시아ㆍ태평양 재균형(Asia Rebalancing) 전략을 재천명했다. 한미 동맹과 미일동맹의 강화, 이 지역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아세안(ASEAN) 국가와의 연대 강화를 통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봉쇄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을 통해 경제적 우방을 든든히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국과 맞설 수 있는 현대적 군사력을 건설해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 호를 취역시킨데 이어 곧 미국의 니미츠 급 핵항모와 유사한 11만t급 항모를 건조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대륙간탄도탄(ICBM) ‘둥펑-41’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쥐랑-2’를 시험발사하면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장 능력까지 선보였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란 핵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 방공식별구역(CADIZ)를 시작으로 미중 패권 경쟁이 앞으로 더 한층 격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외교안보 관계 전문가는 이와관련 “동북아 정세에서 앞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중국의 행동”이라면서 “국제규범을 무시한 중국의 대국주의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이 정세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양 강대국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은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방어(MD)시스템 참가를 계속하거나 중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에 공동 대응하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 역시 “한국의 정치적 운명을 어느 쪽에 걸겠느냐”고 묻는 질문이다.
한국이 동북아의 다른 국가 들에 비해 미중 경쟁에 민감하게 반응 하면서도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북한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후견인 노릇을 하는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노무현 정부 시기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며 미중과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며 ‘세력 균형자(power balancer)’로서 행동하겠다는 것 역시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인계철선에 대북 안보전략을 상당부분 기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뽑을수도, 그냥 둘수도 없는 오래된 충치, 일본=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구조적 숙명’이라면 우경화 되는 일본과의 갈등은 ‘오래된 충치’ 같은 문제다. 특히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같은 과거사 문제는 일본과의 관계 뿐 아니라 폭발력 강한 국민 정서도 고려하는 ‘양면 게임’이 필요한 난제다.
양국 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정작 두 나라 정상은 취임 후 한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일본의 성의있는 태도 변화 없이는 만나봐야 소용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빠른 시일 내에 한일 정상회담을 열고 싶다”는 아베 총리는 우리 정부가 누차 우려의 뜻을 전달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2013년은 그대로 보냈더라도 새해에는 다자 외교 무대를 시작으로 정상 간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지만 이번 참배로 아베 총리 임기 동안에는 한일 정상회담이 물건너갔다는 전망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당장 우리 정부는 대일외교 기조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과거사 문제 등과 관련된 일본의 도발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끊지 않고서는 한일관계 안정화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고 그에 맞게 기조와 전략을 수정ㆍ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그동안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제의 등 일본의 대화 공세에 대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앞으로는 우리 정부의 이런 입장이 더 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사 문제와 정상회담 등 중요 외교일정이 사실상 포괄적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대 역시 쉽지 않은 난제다. 유엔(UN) 헌장이 모든 국가에 보장하고 있는 권리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참회로서 “전쟁을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는 평화헌법과 전수방위(全守防衛) 원칙을 지켜오던 일본이 미군 지원을 이유로 ‘진짜 군대’를 키우겠다는 데 대해 침략 전쟁을 겪은 한국과 센카쿠열도를 두고 일본과 대결을 펼치는 중국은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간 미국은 “한국이 당면한 안보 위협보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한다”며 한국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해왔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이후. 일본의 방위력 증강이 주변 국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미국의 권고를 무시한 셈이 되자 “일본이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의 근간을 흔들었다”며 “일본 중심의 동북아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 내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한국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제동하기 위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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