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속 추가 부담 눈덩이 제도 변경놓고 노사 갈등 불가피 車·부품·조선업계 등 초비상 외국계 기업 ‘脫한국’ 불보듯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반전’보다 더 골치 아픈 ‘후반전’이 시작됐다.”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재계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언젠가 터질 ‘폭탄’이지만, ‘왜 하필 지금’이란 속앓이도 나온다. 당장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에, 내년 임금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노사 간 기 싸움이 예고된다. 연말 분위기는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 기업별로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코리아 엑소더스’가 한층 가열되리란 우려도 나온다. 생산직이 많은 제조업일수록 통상임금 후폭풍이 더 거셀 전망이다. 고임금에 따른 생산성 악화,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이란 악순환이다. 통상임금 후폭풍이 어디까지 몰아칠지,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재계, 내년에 지불해야 할 비용만 13조여원=대법원이 통상임금 판결을 내린 지난 18일, 재계도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선착순으로 배포하는 대법원 판결 방청권을 구하려는 물밑 경쟁까지 치열했다고. 주요 그룹 한 관계자는 “노사 담당 및 법무팀은 이미 사실상 연말을 반납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대응책을 묻는 기업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재계가 이처럼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이번 판결의 파장은 엄청나다. 경총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당장 내년에 지불해야 할 추가 비용이 13조750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 이후 통상임금 인상에 따른 초과근로수당 인상 등에 따라 매년 추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도 8조8663억원에 이른다. 특히 상여금 제도가 사무직보다는 생산직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고, 통상임금 인상의 여파가 야근이나 특근 수당 등과 연동된다는 점에서 제조시설 기반을 갖춘 기업들이 한층 더 민감한 상황이다. 자동차업계나 부품업계, 조선업계, 중공업계 등이 이에 해당된다.
▶혼란은 이제 시작, 내년 노사 협상이 분수령=정작 발등에 떨어진 문제는 내년 임금협상이다. 이번 판결로 노동계는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을 명문화할 수 있게 됐다. 당장 내년 노사 협상 때부터 이를 적극 요구할 전망이다.
관건은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을 어떻게 상쇄하는가이다. 재계 관계자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기업이 모두 감내할 순 없고, 결국 상여금 규모를 축소하거나 상여금 제도를 변경하는 게 불가피한 수순”이라며 “노동계에선 현 상여금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통상임금 인상을 요구할 게 당연하기 때문에 노사 간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특히 내년이 통상임금 판결 이후 첫 노사 협상이란 점에서 노사 모두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여금 제도 및 비용 조정을 통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사측과, 통상임금 확대가 상여금 축소 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노조 간의 치열한 기싸움이다. 첫 단추를 유리하게 마무리하려는 줄다리기 속에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법원 판결 이후 연봉이 수백만원까지 인상되리란 각종 분석이 쏟아지는 것도 노사 양측 모두 부담이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 관계자는 “각종 예상치도 현재의 상여금 제도 및 규모를 유지한다는 조건하에 나오는 것”이라며 “노사 협상에 들어가면 사실상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직원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면 협상에 임하는 노사 모두 부담이 된다”고 토로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도 “임금체계를 다시 손보는 작업이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고임금에 부담, 코리아 엑소더스 가속되나=고임금에 따른 생산성 약화가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지리란 우려도 커진다. 특히 외국계 기업의 분위기는 더 심각하다. 각종 정부 규제 정책 등을 이유로 국내 생산시설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리란 소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게 최근 외국계 기업의 동향. 여기에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불에 기름을 더하는 꼴이 됐다.
한국지엠은 통상임금 이슈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외국계 기업이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댄 애커슨 GM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돼야만 한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지엠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지난해 80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준비했다며 철수설과 선을 긋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최종 판결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르노삼성도 최근 방한한 제롬 스톨 르노 부회장이 “한국은 노동비용이 높아 문제”라고 발언을 한 뒤로 국내 생산설비를 축소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르노삼성 역시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탈(脫)한국화’가 이어지면 결국 고용 문제로까지 비화된다”며 “통상임금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노사 간 신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수ㆍ박수진ㆍ신동윤 기자/
김상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