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송강호
2030년 빙하기의 지구에서 정쟁의 피바람이 불던 1452년의 조선으로, 그리고 다시 1980년대 엄혹한 독재 치하의 법정으로.
송강호의 ‘신세기’다. 시공간을 건너뛰면서 여는, 46세 ‘순혈’의 영화배우 송강호의 특별한 시간이 한국 영화 절정의 시대와 만났다. 봉준호라는 걸출한 영화작가의 탄생과 송강호라는 ‘괴물’ 같은 배우의 출현을 알린 10년 전의 ‘살인의 추억’이 그랬듯이, 배우로서 그가 접어든 새로운 국면은 한국 영화사의 또 다른 페이지다. 톱스타 중에선 TV 드라마로의 발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거의 유일무이한 연기자이므로 마땅히 ‘순혈의 영화배우’라 할 수 있는 송강호. 한국 영화가 사상 최고의 부흥기를 맞은 가운데 송강호는 올해 ‘설국열차’와 ‘관상’으로 20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고, 18일 개봉한 ‘변호인’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에 도전한다.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대개 체제의 주변이나 바깥에 있는 인물이었다가 때로 떠밀려, 때로 무심코 권력이나 사건의 중심부로 들어서면서 희비극을 자아내는 인물이 된다. 보잘것없는 힘과 지능을 가진 이가 국가마저 포기하거나 오판한 거대한 적을 상대로 홀로 싸우자고 나섰을 때 관객들은 우스꽝스럽고 측은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물의 감정에 동화된다. ‘살인의 추억’이 그랬고, ‘괴물’이 그랬다. 약에 취해 정신 놓고 살던 ‘열쇠공’이 본의 아니게 반란의 최전선에 선다거나( ‘설국열차’),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꿈이었던 몰락한 가문의 사내가 당대 권력 투쟁의 한복판으로 휘말려 들어간다거나( ‘관상’), ‘돈 버는 게 억수로 좋다!’던 속물 변호사가 ‘국밥 한 그릇’으로 인해 국가권력의 부정에 맞서고 시대의 양심을 변호하는 인물( ‘변호인’)이 된다. 올해 영화 3편은 평범하거나 보잘것없는 사내가 모종의 거대한 흐름이나 사건과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희비극이 송강호에겐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기꺼이, 열광적으로 송강호가 구현하는 인물을 받아들였다. 보잘것없는 이의 인생사와 당대의 거대하고 특별한 사건이 부딪치고 맞물렸을 때 권력이나 집단의 운명은 거창한 외피를 벗고 우스꽝스러운 본질을 드러내거나 개인의 삶에 드리워진 본래의 비극적 속성이 베일을 벗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를 물었던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우리 시대의 ‘얼굴’이자 모든 ‘아비’들의 초상이 됐다. 아들을 잃고 울부짖다 피를 토해내며 꺽꺽대던 아버지의 울음( ‘관상’), 딸을 새로운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야 했던 ‘아버지의 숙명’( ‘설국열차’)은 부성애가 두드러졌던 올해 한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변호인’에서 두 남매의 아버지인 송우석 변호사는 부와 권력을 보장하는 대기업의 의뢰를 뿌리치고 위험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변호를 맡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안 살게 해야지요.”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