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이라 그런지 (하하) 다들 용기를 많이 주셨죠.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나.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될 집사람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제가 일주일을 고민했는데,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당신이 이삼십대의 젊고 핫한, 충무로 최고에 있는 스타라면 모를까, 산전수전 우주전까지 겪은 사람이 뭐가 겁날 게 있느냐’고 말입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80년대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송강호가 받은 것은 지난 2011년 9월말이었다. 평소대로의 송강호는 충무로에서도 출연제안에 대해 ‘예스, 노’가 가장 빠른 배우에 속한다.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인’은 달랐다. 하루만에 제작자에게 “내가 하기에는 버겁다”며 거절을 했다가 일주일만에 스스로 뒤집었다.

“안한다 했는데, 시나리오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겁니다. 사실 느닷없이 제안을 받고는 제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한방에 마음에 담기에는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죠. 정치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다른 영화야 제가 잘 못하면 저 혼자 욕먹으면 되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달랐죠. 단 1분 1초, 한 프레임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고귀한 삶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배우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지요. 제가 처음으로 촬영 전 세트장에 미리 가서 혼자 연습을 했습니다. 촬영장은 아주 화기애애했습니다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배우 송강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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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광화문 한 호텔에서 만난 송강호는 “시나리오가 분노보다는 따뜻함을 품고 있어 마음을 움직였다”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지역에서 부동산 및 세법 전문 변호사로 부를 쌓으며 승승장구하던 고졸 출신의 속물변호사, TV에 비친 시위학생들을 보고는 “명문대생이나 돼 가지고 공부하기 싫어 저 지랄들”이라고 욕하던 주인공이 가난한 국밥집 대학생 아들이 연루된 시국사건 변호를 맡게 되면서 시대의 양심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후반부는 주인공이 변호를 맡아 공안 검찰과 법정대결을 벌이는 1~5차 공판과정이 길게 담겼는데, 상식과 헌법정신에 호소하며 열변을 토하는 대목에선 송강호가 왜 당대 최고의 배우인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 이어진다. 송강호는 1~5차에 이르는 공판 신을 “실제 변호를 준비하듯 촬영장에 오일 먼저 들어가 연습했다”고 밝혔다. 법정의 피의자로 앉게 된 송강호를 길게 보여주는 엔딩 신은 그의 얼굴을 또 다른 ‘시대의 초상’으로 스크린에 새긴다.

배우 송강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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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영화 모델이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전 두 번, 재임 당시 만났다. 한번은 송강호가 모범납세자 대통령상 수상자로 됐을 때, 수십명의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먼 발치에서 지켜봤고, 칸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에서야 근거리에서 대면했다. 당시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 그리고 영화인 몇명과 동석한 소박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송강호는 “질문이 도연이와 이 감독님께 집중돼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았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