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기업 오명 쓸까 경찰 조사에 비협조적 면모
사건 하나 송치에 평균 1년 소요…수사 단계별 난관
대표적 3D 부서로 소문…실적 홍보도 어려운 측면
자체인지 사건 저조에…경찰청, ‘전직원의 외근화’ 모토 삼아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산업기술유출사건의 경찰 자체 인지 수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대부분 고소나 고발이 들어와 수사를 시작한다. 피해기업측에서 기술유출이 알려질 경우 주가 하락할까 떠들썩하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고, 직접 해결해보려다 정 안되면 그때 수사기관을 찾기 때문이다.”(안보수사계 경찰)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기술유출사범 검거현황은 149건으로 2021년(89건) 대비 67% 증가했다. 특히 해외 유출 사범이 같은 기간 9건에서 22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방첩경제안보수사는 일반 경제사건 대비 기본적으로 사건 난이도가 높은데다, 사건 참고인인 피해기업측의 소극적인 참여로 인해 경찰 등 수사기관이 애를 먹는 분야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에서 서울 ‘빅 5’중 한 병원의 산하 연구소에서 심혈관 중재 시술 보조 기술을 비롯해 첨단 의료 로봇 기술 파일을 중국으로 무단 반출한 중국인 유학생 연구원을 입건하고 조사할 당시, 참고인인 해당 연구소 관계자들이 단 한 차례도 경찰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경찰이 매번 직접 연구소로 찾아가야만 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경찰이 초기 기술유출 정황을 인지하고 수사에 나서려는 많은 경우, 피해기업은 기업 평판의 저하 및 주가 하락 등의 이유로 협조를 잘 안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기술유출 트렌드로는 문서나 기술을 유출하지 않고, 특정 직무능력을 가진 인재를 빼내 해당 기술과 관련 없는 페이퍼컴퍼니에서 채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이직한 직원은 전직 금지 기간을 회피할 수 있다. 반면 경찰 등 수사기관은 이직한 회사에서 해당 직원이 전 직장에서 하던 일을 하고 있는지를 규명해내야 하는데, 여간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현직 수사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안보수사 경찰관은 “산업기술유출은 사건 하나 송치하는데 평균적으로 1년 걸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분야”라고 언급했다.
경찰이 어렵게 수사해 송치하더라도 실적을 홍보하는데 장애물이 있다. 특히 국내 기업간 유출인 경우 가해기업 측에서 경찰을 향해 ‘피의사실 공표’라며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해기업측이 펼치는 논리는 ‘재판으로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겨우 경찰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유죄인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또 아예 해외로 이직한 경우에는 수사 자체가 쉽지 않다. 산업기술유출 수사는 신속한 압수수색이 생명이다. 보통 이직한 직원이 자료를 가지고 나갔다는 정황으로 신고가 들어오기 때문에 경찰은 가해기업과 유출 직원을 발빠르게 압수수색해 정말로 탈취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유출된 기술에 영업비밀성이 있는 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중국 등 해외 소재 기업일 경우 현장을 압수수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출 직원이 해외 이메일과 해외 클라우드를 써서 기술을 반출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압수수색까지 성공적으로 마쳐 수사의 전반전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첩첩산중이다. 한 현직 수사관은 “포렌식 장비로 기업의 서버와 클라우드를 복사해서 다운로드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만 하루, 이틀이 걸리고, 가져오고 나서는 그 방대한 전자 정보를 분석해야 한다”며 “범죄 사실하고 맞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정확하게, 요건별로 자료를 분석을 해야 되는데, 이걸 수사관 혼자서 할 수 없고 피해기업, 전문가와 함께 확인해야 해 매우 길고 힘든 작업이 이어진다”고 털어놨다.
경찰 내부에서도 산업기술유출 등을 담당하는 방첩경제안보수사계는 대표적인 ‘3D’ 분야로 정평나 있다. 최첨단 포렌식장비를 써도 결국 수사는 기본적으로 ‘노가다’를 포함한다.
한 경찰 간부는 “그렇다고 직원들이 하기 싫은데 끌려온 것은 아니다. 나름 역량 있고, 이쪽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수사관들이 오지만 언제까지 개인의 사명감에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수사가 갈수록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직원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사 실무에 개선이 기대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산업기술보호법)’에서 처벌을 위한 구성요건을 ‘목적’에서 ‘고의’로 넓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전보다 경찰의 혐의 입증에 수고가 덜 들 수 있다.
지금은 기술을 고의로 빼내 해외로 건넸다고 해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을 갖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고의성만 인정되면 처벌할 수 있다. 특히 미필적 고의까지 넓게 인정되면, ‘집에 가져가서 잔업을 하려 했다’는 식의 변명도 안 통하게 될 전망이다.
해당 법안 발의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미필적)고의’로 요건이 완화되면 ‘당신이 그 업계 종사자이고 10여년간 일을 한 사람으로서 회사 밖으로 반출하는 것 자체가 영업비밀 유출임을 몰랐을 리 없다’고 유출 사실만으로 혐의 구성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은 산업기술유출 수사에서 자체 인지사건을 늘리려 애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경찰청은 방첩경제안보수사계의 정책적 방향을 ‘전 직원의 외근화’로 정했다. 관내 기업을 대상으로 △보안진단 △범죄피해 상담·신고 접수 △수사사례 설명 △교육·홍보 활동을 전담하는 ‘보안협력관’을 모든 안보수사대 수사관이 겸임하고, 각종 산업계 컨퍼런스를 통해 기업과의 대면접촉을 늘리고 있다.
한 안보수사계 간부는 “각 수사팀별로 전담 기술·전담 산업단지를 지정해서 산업계 동향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기업인들을 만나 경찰에 우리 부서가 이렇게 있다고 소개하고 수사관 개인 전화번호, 이메일을 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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