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경·대륙아주 주최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

함병호 한국교통대 교수 강연

처벌만 집중땐 재해감소 효과 적어

“중처법, 처벌 피하려 문서만 치중…경영·종사자 주체 영역 명확해야”
헤럴드경제와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공동주최하는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 3월 초청강연이 15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초청연사 함병호 한국교통대학교 교수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대응전략’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종사자 등 책임·실행 주체 영역이 명확히 구분돼야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고경영자의 처벌에만 중점을 맞추면 사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단순 문서 작업에만 치중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함병호 한국교통대학교 교수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가 공동으로 주최한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대응전략’을 주제로 강연에 나서 이같이 강조했다.

함 교수는 지난 1년간 중처법이 시행됐지만, 실질적으로 사고성 사망재해를 감소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전 업종의 사망자 수는 644명으로, 전년 대비 6.1%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 수는 10.8% 감소해 전체 감소를 주도했다는 게 함 교수의 평가다.

그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아직 중처법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전체 사망재해 감소를 주도했다”며 “중처법 적용 여부와 관계 없이 사회 전반의 재해 감소 분위기가 소규모 사업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함 교수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그는 “해설집, 가이드북, 자율점검표 등 정부가 내놓은 안들은 단발성 지원뿐”이라며 “기술 및 재정지원사업은 기존 사업방식의 틀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중처법을 끼워 넣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많은 기업이 산업재해 예방에 관심을 가진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모호한 규정과 과도한 처벌로 혼란도 컸다는 진단도 내렸다. 이에 더해 함 교수는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중처법이 확대 적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50인 미만 사업장들이 지금 상황에서 중처법의 모든 사항을 준수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며 “유예기간 연장, 정부 지원 확대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큰 이유”라고 짚었다.

특히 함 교수는 대규모 사업장과 동일한 형태의 안전보건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규제사항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함 교수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 예방 노력보다 처벌 회피에 더 많은 노력을 쏟는 현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원지방검찰청이 지난해 6월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사범 최초 기소’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A와 B사는 유해물질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 국소배기장치 설치 등 안전조치를 갖추지 않아 근로자들의 독성간염 증상 발병을 초래했다. 하지만 두 업체에 대한 법원의 평가는 달랐다. A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돼 대표이사가 중처법 위반죄로 불구속기소 됐다. 하지만 B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춘 것으로 확인돼 중처법위반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안전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도 구축만 되어 있다면 중처법 위반혐의가 없다는 판결이 나온 대목이다. 함 교수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 자체가 안전보건체계 구축이 미흡했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며 “이 같은 판례가 쌓이면 완벽한 문서를 구축하는 데만 몰두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설비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위험성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사고 예방에 충실한 라인 주도형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최고경영자, 종사자, 안전스태프 등 각각의 책임주체, 실행주체, 지원주체가 모두 위험 관리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