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993년 메모리 반도체 1위 달성 후
강력한 원가경쟁력으로 시장주도권 유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1993년 이후 줄곧 세계 1위 ‘왕좌’ 지킨 삼성전자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단 한 차례도 ‘인위적 감산(반도체 칩의 원판인 웨이퍼에 대한 투입량 감소)’을 공식화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역사적으로 두 차례 진행된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무릅쓰며 경쟁하는 게임)에서 삼성이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를 통해 삼성은 줄곧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른 건 1993년으로 당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추정한 시장 점유율은 10.8%. 1980년대까지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 반도체 기업을 삼성이 제친 것이다.
이후 1993~1995년 글로벌 PC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D램 메모리 시장은 ‘폭풍 성장’했다. 제품 호황에 메모리 기업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당시 시장 성장은 향후 ‘대공황’이라 불릴 정도의 역대급 치킨 게임의 서막이 된다.
당시 일본(5곳), 한국(3곳)을 비롯해 전세계 12곳의 반도체 기업이 D램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1995년부터 경쟁적으로 공장을 건설했다. 그 결과 1996년부터 이들 기업간에 D램 가격 하락 폭이 거세졌다. 당시 PC용 D램 가격이 약 90% 가까이 하락했고, 서버·그래픽 D램 등도 60~70% 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삼성은 몇 차례 공장 가동을 중단하긴 했으나, 다른 기업에 비해 공급량 감소폭을 최소화했다. 그만큼 원가경쟁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9월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한 삼성은 슈링크(칩의 고집적화) 개발과 당시 주력제품 고용량화를 통해 웨이퍼당 비트 생산량을 매해 40~50%가량 끌어올렸다. 반도체 칩 판매 가격 하락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삼성 입장에선 다른 경쟁사에 비해 수익성 확보가 유리했다. 이때 삼성은 설비 투자도 오히려 늘렸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삼성의 D램 사업부의 연간 평균 자본 투자액은 1억3400만달러(약 1700억원)로 일본 D램 기업 4곳의 연간 평균 투자액의 4.7배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치킨게임은 1998년까지 이어지며 반도체 업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999년 일본 NEC와 히타치 D램사업부가 통합돼 ‘NEC 히타치 메모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 회사가 다시 2000년 5월에 이름을 ‘엘피다 메모리’로 바꾼다. 치킨게임의 또 다른 결과로 1999년에는 현대전자가 LG반도체 경영권을 확보하는 등 통합작업을 진행하며 2001년에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전신)가 된다.
2006년에 D램에 대한 급격한 호황이 찾아오면서 또 다른 치킨 게임이 발발했다. 당시 메모리 칩 회사들은 이같은 호황을 예상 못했다고 한다. 2006년 중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PC 시장이 되었고 중국의 대명절인 춘절이 D램 시장의 뜨거운 판매 시즌으로 부상했다. 신흥 시장의 PC 수요도 뜨거웠다. 1990년대 미국·유럽이 PC 수요를 끌어올리며 치킨게임의 전초전을 만든 양상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 상황에서 대만 메모리 업체들을 중심으로 ‘단가 후려치기’식 칩 생산·판매가 거세졌다.
그러나 삼성은 당시에도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치킨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006년 4분기에 삼성 반도체는 영업이익률 31%를 기록하며, 10%대인 엘피다, 키몬다, 마이크론을 압도했다.
위기감을 느낀 글로벌 기업들은 연합군이 돼 삼성에 맞섰다. 엘피다는 대만의 ‘파워칩’, 중국의 SMIC와 제휴를 맺었다. 당시 세계 D램 2위인 독일 키몬다는 또 다른 대만 업체인 난야와 협력하여 합작 회사를 설립해 21%의 시장 점유율을 챙겼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대만의 기업인 프로모스와 손잡았다.
그런데 이때 삼성을 제외한 다른 기업 역시 감산 없이 투자를 계획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D램 경쟁사들은 삼성의 사례를 보면서 감산이 치킨 게임에서 승리 비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칩의 생산을 줄이는 게 아니라, 더 원가가 싼 칩을 대량 생산해 많이 시장에 파는 것이 버티는 길이라는 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기존의 8인치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12인치 웨이퍼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칩 기술 고도화 역시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기업들간 무감산 경쟁은 이들을 ‘진정한 치킨 게임’으로 안내했다. 그 결과 2007년 2분기 D램 칩 생산량은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하며 가격 폭락 사태를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시화된 2008년 하반기가 돼서야 치킨게임이 끝났다.
또 다시 판이 뒤바뀌었다. 키몬다가 2009년 1월 처음으로 파산을 선언했다. 엘피다는 3년을 버티다 2012년 2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2012년 7월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엘피다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D램 시장은 현재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2012년에 SK그룹 편입), 마이크론의 주요 3강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당시 대만의 D램 산업이 붕괴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대만이 자국의 전체 D램 공급망 붕괴를 뼈아프게 받아들이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엘피다를 비롯한 메모리 업체들이 현금이 풍부하고 원가 경쟁력이 높은 삼성전자와 맞서기 위해 막대한 자본지출을 지속하면서 공급망 붕괴에 빠지기 시작했다”며 “두 차례 치킨 게임 사례를 바탕으로 삼성은 무감산을 오히려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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