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동남권의 중추도시인 우리 대구는 예부터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신라시대에는 도읍을 경주에서 달구벌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을 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이 위치하여 영남의 정치ㆍ경제ㆍ군사ㆍ교통의 요지로, 대구가 명실상부한 영남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깊이만큼 대구 도심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유산은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중 경상감영과 달성은 대구의 유구한 역사와 발자취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되고 있다.
경상감영이 들어서면서 대구가 경상도의 중심도시로 도약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는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각 도에 감사(관찰사)를 두었다. 감사는 감영에서 정무를 보면서 행정, 사법뿐만 아니라 군사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감영은 감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으로,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이 바로 경상감영이다.
경상감영은 조선 초기 경주에 위치해 있던 것이 상주, 칠곡, 안동 등지로 옮겨지다가 선조34년(1601)에 이르러서야 대구에 정착하게 된다.
조선 초기에는 관찰사가 도내 각 고을을 순회하면서 관리ㆍ감독하는 체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감영에서 머무르며 업무를 관할하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감영이 위치한 대구는 명실상부한 경상도의 중심도시로 도약하며 정치, 경제, 행정, 사법, 군사 중심지로 급부상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감영은 별도의 관아시설이 없었으나, 후기가 되면 감사의 집무 및 거처 공간인 선화당(宣化堂)이나 징청각(澄淸閣)과 같은 관아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정청인 선화당의 정남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를 만들어 관풍루(觀風樓)라 하였는데, 그 이름은 ‘감사가 누상에서 세속을 살핀다(觀風世俗)’에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상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각종 공물과 진상품이 집중되는데, 3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도 감영의 객사 앞에서 열린 작은 시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낙동강과 금호강이 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지역 내의 각종 상품을 수송하기에 매우 편리해 국내 최대의 한약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서 깊은 경상감영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비운의 역사를 맞이하는데, 1906년 당시 관찰사 서리였던 친일파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헐어내고 읍성 안에 십자도로를 건설하면서 경상감영의 본 모습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1910년 경상감영은 경북도청으로 바뀌게 되고, 1966년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이전하면서 감영이 있던 자리는 ‘경상감영공원’으로 조성되어 그 터가 보전되고 있다.
수천년간 달구벌 원형 그대로
우리에게 동물원으로 익숙한 달성공원은 ‘달성(達城)’이라고 하는 평지의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이다.
최초의 기록으로는 ‘신라 첨해이사금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 벼슬의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원전 무렵부터는 대구의 어원이 되는 ‘달구벌국’이 성립되었던 대구의 중심지였고, 삼국시대가 되면 인근의 달성고분군에서 보듯이 신라의 영향을 받은 찬란한 고분문화가 전해졌다. 고려 말에는 달성 서씨의 세거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잠시 동안 경상감영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신사가 들어서면서 대구시민에게 치욕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달성은 무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공간으로, 대구를 상징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대구시민의 가장 오래된 쉼터이자 스토리의 보고가 되고 있다.
대구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시민들의 쉼터
대구 동인동에 조성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1907년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의 시민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장소이다.
국채보상운동은 김광제와 서상돈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천 3백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발의된 것으로, 대구에서 시작된 의미 있는 기부운동이자 경제자주권 회복운동이었다. 이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 할 수 있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공원 내에는 달구벌대종, 종각, 참나무 오솔길, 분수와 정자, 잔디광장, 시상의 오솔길 등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달구벌 대종은 향토의 얼과 정서가 담긴 맑고 밝은 소리가 울려 만인의 기상을 일깨우고 화합과 번영을 염원하는 대구시민의 뜻을 온누리에 알리고자 1998년에 설치한 것으로, 매년 1월 1일 제야의 종 타종식을 거행하고 있다.
특히 2011년에는 공원 서편에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개관하여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을 계승하고 역사적 사실을 알리며 대구시민에게 길이 남는 정신적 자산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