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영국의 노동 개혁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후진적인 노동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현장에서 폭력과 협박에 터를 잡은 불법을 놔두면 그게 정부고 국가냐”며 ‘노동개혁’을 남달리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영국의 대응 방향이 새롭게 주목된다는 분석이다.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영국 쟁의행위 관련 정책의 국내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크고, 최근 정부가 불합리한 노동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최우선 과제로 노동개혁을 꼽았다”며 영국의 노동개혁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노사협력 순위(2019년 세계경제포럼 자료 기준)가 주요 141개국 중 130위를 기록할 정도로 하위권이다. 2012~2021년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 역시 38.5일로, 영국(12.7일), 미국(8.8일), 일본(0.2일)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은 공무원들과 만나 노동개혁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노동개혁의 여러 분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야는 법치”라며 “산업현장에 노조 간부의 자녀가 채용되고, 남은 자리로 채용장사를 하는 불법행위를 정부가 방치하면 민간 경영자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현장에서 폭력과 협박에 터를 잡은 불법을 놔두면 그게 정부고, 국가냐”고 비판했다. 최근 윤 대통령은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과제와 공직 사회를 민첩하고 유연하게 바꾸는 ‘정부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오고 있다.
전경련은 영국의 입법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쟁의 행위 대상이 제한된다. 직접 근로 계약이 있는 사용자(근로자를 고용한 개인이나 법인)에게만 쟁의를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하청노조의 원청 사용자 또는 자회사 노조의 모회사에 대한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것이다.
쟁의 행위는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근로자 업무나 징계 ▷노조 가입자격 등에 국한해서만 가능하다. 그 외에는 쟁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투자 결정이나 민영화 등 경영권에 관한 사항, 사용자가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정치적 주장, 다른 노조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파업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영국은 찬반 투표 역시 엄격한 절차를 준수한다는 설명이다. 쟁의 행위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할 때 , 현장 투표는 금지하고 우편 투표 방식만 허용한다. 현장 투표는 비밀보장을 침해하고 군중 심리에 휩쓸린 결정을 야기한단 설명이다. 우편 투표는 노조원들이 쟁의 행위에 대해 가족과 논의하며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쟁의 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준비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영국에선 노조에 단계별 통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찬반투표 7일 전까지 노조가 조합원 수, 투표자 수, 조합원들이 속한 사업장 목록 등의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 ▷찬반투표 후에는 투표자 수, 찬성률 등이 포함된 투표결과를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통보 ▷노조가 쟁의 행위를 하는 경우 14일 전까지 사용자에게 쟁의 행위 개시일, 기간, 참여조합원 수 등을 통보하는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또 투표 운영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조는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제3자를 투표 참관인으로 선임해야 한다. 쟁의 행위 가결 요건은 재적조합원 과반수 투표, 투표자 과반수 찬성이다.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찬반 투표 개시일로부터 6개월이다. 이를 초과해 쟁의 행위를 하려면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쟁의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 영국 노조법은 다른 근로자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하는 피케팅 방식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폭력 행사 및 위협 또는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 ▷여러 장소에 걸쳐 타인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는 행위 ▷타인의 소유물을 숨기거나 박탈하거나 사용을 방해하는 행위 ▷사업장 외의 다른 장소를 감시·포위하는 행위 ▷거리에서 2인 이상이 무질서하게 타인을 따라다니는 행위 등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위반시 형사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또 합법적인 피케팅은 관리감독자 선임 후 사업장 주변에서만 가능하다.
직장 점거도 엄격히 금지된다. 점거가 사용자의 재산권과 주거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쟁의 행위가 시작되면 파업 참여 근로자는 가능한 빨리 사업장 밖으로 이동해야 하며, 불법 점거를 한 노조원에 대해서는 해고가 가능하다. 사용자는 대체근로와 해고 가능, 정부는 공권력 신속 투입이 된다.
쟁의 행위가 발생하면, 사용자는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규채용, 도급, 기간제 채용 등을 통해 대체근로를 시킬 수 있다. 과거에는 파견근로자를 통한 대체근로가 금지되었으나, 2022년 6월 철도·지하철·간호사 등으로 파업이 확산되자 영국 정부는 같은 해 7월 파견근로자 대체근로 금지 규정을 폐지했다. 구급차 운전사와 국경 보안 직원들이 임금인상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하자, 정부는 1200명의 군인과 1000명의 공무원을 투입해 대체근로를 가능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사용자가 불법 쟁의 행위에 참여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사용자가 분쟁 해결을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쟁의 행위가 12주를 초과해 지속될 경우에는 근로자 해고가 가능하다.
노조 집행부의 승인여부는 합법 쟁의 행위의 요건 중 하나다. 따라서 집행부가 승인하지 않은 쟁의 행위(비공식 파업)는 불법으로 간주돼 참가 근로자가 해고될 수 있다. 쟁의 행위를 조직한 개인은 손해배상책임도 져야 한다. 1984년 대처 정부가 광부노조의 불법 쟁의 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한 이후, 영국 정부는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해 공권력을 적극 행사하고 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노조천국’이었던 영국은 대처 정부의 단호한 대응과 지속적인 노동개혁을 통해 영국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도 노조에 기울어진 제도를 바로잡고 선진적인 노동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영국의 노동개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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