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벽은 라흐마니노프 자기자신
임윤찬·호로비츠·리흐테르 두각
음악은 영원하다. 무수히 많은 피아니스트가 최고의 라흐마니노프를 음반과 영상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의 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영원한 에베레스트’이며, 그럼에도 ‘도전하고 정복해야 하는 목적지’(류태형 평론가)다.
모두가 라흐마니노프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최고’는 존재한다.
▶ ‘넘사벽’ 라흐마니노프=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단연 라흐마니노프 자신이다. 그는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릴 만큼 “피아니스트들이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최고의 연주자”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호주의 라임라이트매거진이 지난 2011년 그리고리 소콜로프, 안드라스 쉬프, 알프레드 브렌델 등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 100인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우상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라흐마니노프가 1위에 올랐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본인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야 해서 더 많은 음악을 작곡하지는 못했을 만큼 뛰어난 연주자였다”며 “거대한 손으로 해석하는 연주는 피아니스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라흐마니노프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녹음 기술이 발전해) 더 나은 녹음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역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큰 손을 가진 자신의 특성을 반영한 음악”이라며 “다른 곳보다 넓은 간격의 화음을 사용했고, 자신의 쓴 곡을 연주하는 데도 루바토(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템포를 바꿀 수 있다는 연주기호, 의도적으로 템포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연주한다)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는 지금도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피아노협주곡을 ‘세계 최고의 명반’이라고 꼽았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도 “지금은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과장해 표현하려는 부분이 있다”면서 “정작 라흐마니노프는 본인의 자의식을 음악 안에 집어넣으면서도, 담담하고 절제된 자연스러운 연주로 설득력을 준다”고 평했다.
▶호로비츠, 리흐테르, 아슈케나지...러시아의 피아니스트들=라흐마니노프 외에 그의 음악을 잘 표현하는 피아니스트들은 아무래도 러시아 출신들이 많다. 스승에서 제자로 ‘음악적 유산’을 남겨가는 ‘러시아 피아니즘’이 만들어내는 음악 비법이 남다르다.
류 평론가는 “스승을 거쳐 대를 이어 전해오는 러시아 피아니즘은 갈라파고스를 형성해 그 안에서 주고받는 정보와 해석의 역사를 만들었다”며 “요리 비법처럼 연주의 비법이 존재하는데, 러시아 피아니즘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타건 등 그들만의 이상적 형태와 해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러시아 피아니즘’의 정수를 잇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등의 피아니스트들이 여전히 ‘최고의 라흐마니노프 연주자’로 꼽힌다. 리흐테르는 러시아의 특유의 정서를 잘 표현(허 평론가)했고, 그 자체가 가진 감성이 라흐마니노프와 잘 맞는 연주자로 꼽힌다. 호로비츠는 라흐마니노프와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면서 압도적인 연주를 들려준 연주자(장 평론가)로 꼽힌다. 아슈케나지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라흐마니노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이상적인 연주(류 평론가)를 들려줬다.
지난 2010년 쇼팽 콩쿠르 3위,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러시아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도 라흐마니노프에서 두각을 보인다. ‘조성진의 라이벌’로 꼽히는 피아니스트다. 그는 지난 2018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 곡을 앨범으로 발매했다. 장 평론가는 “영감과 시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창의적인 연주자로 드라마틱한 러시아의 정서를 잘 표현한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최다 재생 ‘라피협 3번’ 임윤찬=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라이징 스타’다. 지난해 6월 이 ‘소년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에 전 세계가 놀랐다.
임윤찬은 당시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불멸의 난곡’을 완벽하게 들려줬다. 그날의 연주는 14일 현재 984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 중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 영상 중 가장 많이 재생됐다. 이전까지 역대 최고 조회 수는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 호로비츠가 지난 1978년 뉴욕 에버리 피셔홀에서 연주한 영상(417만 건)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클래식 평론가 재커리 울프는 지난해 전 세계 클래식 공연 중 인상 깊었던 공연 톱(Top) 10의 하나로 임윤찬의 연주를 꼽았다. 그는 “열정적인 힘과 함께 시적인 표현력이 신선했다”며 “18세의 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성숙함과 자신감이 넘치는 뛰어난 연주”라고 말했다.
허 평론가도 “평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작품에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투영하면서도 작곡가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설득력 있는 연주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오는 5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이 곡으로 데뷔 무대를 갖는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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