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20일 기자회견…폐원 40년만에 첫 진실규명

“국가·관련기관 공식 사과하고 특별법도 제정할 필요”

“167명 피해자 인정”…나머지 신청인도 조사

“수용아동 4600여명 확인돼…전원이 피해자”

사망 확인된 사람 29명으로 늘어…“더 많을것”

선감학원 사건 유해발굴 현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선감학원 사건 유해발굴 현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화위)가 선감학원 수용자 4600여 명 전원을 인권침해 피해자로 인정하면서, 국가와 관련기관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선감학원 폐원 40년 만에 이뤄진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다.

진화위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이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며 “신청인 김영배 외 166명은 선감학원 피수용아동임이 확인되어 아동인권 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부터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등 191명의 신청을 받아 선감학원 사건 조사를 해온 진화위는 이달 18일 제43차 위원회를 열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진실규명에 포함되지 않은 23명에 대한 조사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진화위는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면서 “정부의 부랑아 정책과 제도에 따라 경찰 등의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랑아로 지목한 불특정 아동을 법적 근거 없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강제로 단속한 후 선감학원에 강제 구금한 것은 국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에 대해서도 “아동시설을 섬이라는 단절된 곳에 격리함으로써 통제한 상태에서 아동들의 정신적·신체적 피해와 사망사고 등의 심각한 문제를 파악하고서도 이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진화위는 선감학원 개원부터 폐원까지 40여 년간 수용된 아동은 5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총 4689건의 원아대장 중 입·퇴소 연도와 생년이 확인된 4674건의 원아대장에 따르면 13~17세 아동이 47.8%, 7~12세 아동이 41.9%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 수용아동의 본적지는 시도별로 경기가 30.1%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서울 10.8% ▷전남 8.2% ▷충남 7.6% 등의 순이다.

진화위가 지난달 시굴을 진행한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5곳 모두에서도 유해의 일부와 유품이 발견됐다. 진실규명 신청인들이 진술한 유해매장 장소인 경기 안산시 선감동 산 37-1 봉분 140~150개 중 ▷30호 봉분에서 치아 17개 ▷57호에서 치아 5개·백색단추 2점 ▷71호에서 치아 16개·철제단추 3점·철제미상 1점 ▷73호에서 치아 10개·철제단추 1점 ▷75호 봉분에서 앞니 3개·송곳니 4개·작은어금니 6개·어금니 7개 등이 수습됐다.

시굴용역을 담당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유해 모두를 남성, 15~18세로 분석했다. 뼈 조직이 약한 아동인 데다 매장 후 40년 이상이 지나 유해는 치아머리의 에나멜만 남고 뼈는 삭아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수습된 단추들도 수용아동이 입었던 동‧하복 단추로 확인했다.

또 봉분 크기가 130~160㎝에 불과한 것에 근거해 피해아동들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평상복을 입고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웅크리거나 굽혀진 자세로 얕게 판 구덩이에 묻힌 것으로 판단했다.

진화위는 원아대장 사망자 수(24명)보다 봉분이 훨씬 많고, 원생 800여 명이 탈출을 시도했던 점에 근거해 실제 사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진화위가 추가 확인한 사망자는 5명이다. 진화위가 확보한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1973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모 씨는 같은 해 7월의 어느 날 오전 10시 학원 염전 저수지에서 익사로 자연 퇴학 된 것으로 기재됐다. 이밖에 전체 사망자 사유를 살펴보면 ▷익사 14명 ▷미기재 12명 ▷병사 3명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미기재도 35%나 됐다.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조사자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조사자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선감학원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아동도 82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아대장 4689명 중 17.8%를 차지하는 수치다. 굶주림, 폭력, 강제노동 등에 시달리던 원생 중 상당수가 섬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선감도 주변 서해 갯벌 물살이 센 데다 수심이 깊어 상당수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감학원 운영과정에서 총체적으로 인권침해가 벌어졌다는 진술도 나왔다. 선감학원생들은 밭농사, 논농사, 양잠, 축산, 염전 등 고강도 강제노역에 보수 없이 투입됐다. 일명 ‘원산폭격’, ‘한강철교’, ‘나룻배’ 등 단체기합도 기숙사 사장, 반장, 공무원 등에 의해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기숙사 역시 한 반에 30명이 누워 잘 정도로 좁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식사량이 부족해 원생들이 쥐와 뱀을 잡아먹거나, 나무열매를 따먹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신청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꽁보리밥, 강냉이밥 등이 급식으로 제공되고 부식으로는 오이지, 단무지, 김치 등만이 제공됐다.

신청인들의 피해 후유증 역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화위가 신청인 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1%가 자살시도를 했다. 수면장애 증상에 대해선 35%가 불면증, 30%가 악몽에 시달리고 21%는 신체적 통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위는 “부랑아 대책을 수립하여 무분별한 단속정책을 주도한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와 부랑아 단속의 주체였던 경찰, 선감학원을 운영했던 경기도 등은 총체적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 기관은) 선감학원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국가는 특별법 제정 등 적절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k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