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윤현종 기자]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은 사실상 ‘웨이치(圍棋ㆍ중국어로 바둑) 문화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바둑인구 중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율도 압도적이다. 20여년 전부터 ‘바둑인’ 1000만명을 넘기고 있는 유일한 나라도 중국이다. LGㆍ농심 등 한국 대기업만 세계적인 프로 바둑대회를 열고 있다는 인식은 오산이다. 바둑을 일상으로 여기고 거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최초의 인물은 중화권에서 나왔다.
한국기원이 2009년 발간한 바둑백서와 각종 현지 자료 등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 프로바둑의 얼개를 짠 이는 바로 대만 부호였던 고 잉창치(應昌期ㆍ1916∼1997)다. 그는 과거 중국에서 바둑이 가장 성행했던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출신이다. 잉창치는 은행원으로 인생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대만정부은행 부행장까지 역임하며 30년간 금융계에 몸담았다. 잠시 총통의 비서실장도 지냈다. 금융계를 은퇴한 뒤엔 방직공장 3개를 차려 대만 증권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잉창치는 바둑 활성화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기예 증진을 위해선 프로기사제도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1982년 프로기사 서품(敍品)을 완성했다. 이때부터 중국 바둑의 프로화가 시작됐다. 프로기사의 생계도 보장했다. 1983년엔 1억 대만달러(NTDㆍ미화 322만달러가량)를 들여 잉창치바둑교육기금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88년 세계바둑대회 ‘잉씨배(應氏杯)’를 만들며 중국 바둑계 전면에 등장했다. 1년 전 개인재산을 모두 쏟아부은 결과였다. 기탁금은 500만달러에 달했다. 우승상금은 40만달러. 당시로선 바둑대회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이처럼 그가 바둑에 열정과 돈을 아끼지 않은 건 바둑의 발상지인 중국에서 바둑문화가 널리 보급돼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실제 잉창치는 1987년 잉씨배 개최를 발표하며 “이런 대회를 바둑 발생지인 중국인이 개최한다는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잉창치에서 시작된 중국 부자들의 ‘바둑열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광둥(廣東) 지역의 기업가 천창(陈昌)은 작년 말 한 번에 3000만위안(487만달러)을 들여 세계바둑단체선수권대회를 창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대회의 별칭은 ‘주강배(珠鋼杯)’다. 그가 이사회 주석으로 있는 ‘주강파이프그룹’의 이름을 땄다.
그뿐 아니다. 장쑤성 우시(無錫) 출신 기업가인 천썬룽(沈森龍)도 2003년 ‘웨이푸팡카이배(威浮房開杯)’를 만들어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이 대회는 중국의 바둑기왕전으로 8명의 기사를 초청해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