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 정밀 탐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섬 개수가 한국(세계 4위)의 1.5배 가량인 필리핀(세계 2위)의 7000여개 섬 중, 각각 9번째, 10번째 크기인 세부와 보홀은 이 나라 한복판에 아라비아 숫자 ‘10’ 처럼 놓여 있다. 거북이를 닮은 보홀 면적은 제주도의 2.2배이고 세부가 2.3배이다.
청정생태-민속문화여행지인 보홀로 가려면, 세부퍼시픽 등 인천~세부 직항노선을 이용한 뒤, 세부 선착장에서 오션젯 페리를 타고 1시간 40분 가량 배를 탄다. 페리는 위탁수하물, 보안검색, 핸드캐리1개 허용 등 비행기탑승 절차와 비슷하므로 그에 걸맞게 미리 준비해야 한다.
로복강은 청정 생태의 정글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고, 한국명 ‘갈색오름군’, ‘보홀고분군’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보홀 초콜릿힐은 8월 우기의 한복판에 서서 브라운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1278개 봉우리가 초록초록 빛났다.
보석 같은 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전과 편의 SOC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전망대와 계단은 깔끔하게 단장했다.
▶제주의 2배 청정 보홀 개요= 보홀의 어원은 필리핀 3대 언어중 하나인 비사야 말, ‘보호(Boho:구멍)’이다. 해저지형의 융기 등 다양한 지질현상을 거치면서, 숨은 관광지였다가 굴내 천연수영장으로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팡라오 히낙다난 등 수많이 동굴이 형성됐다고 한다. 보홀주(州)는 140만명이 살고, 대학 3개가 있다. 인구,면적,생활환경 면에서 제주도를 두 개 합친 규모이다.
세부의 외국인 관광객 1위인 한국인은 보홀도 많이 찾는다. 보홀 팡라오 섬 끝자락에 있는 밸부리조트의 안토니라다가 CMO(마케팅총책)는 “세부퍼시픽 등을 통해 세부에 내린 한국인들이 보홀을 찾아주는 덕분에 서서히 숨통을 트고 있다. 보홀공항 업그레이드도 중앙정부가 적극 지원하면서 신축하다시피 했으니 더 많은 한국 분들이 오시길 바란다”면서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한국 밖엔 믿을 데가 없다”고 구애했다.
탁빌라란 항구에서 내린 다음 보홀 여행은 본섬 중남부 생태,민속, 남쪽 팡라오-버진아일랜드-발리카삭 부속섬 호핑-다이빙으로 나뉜다.
팡라오섬 밸뷰호텔에서 다리를 건너 본섬으로 간 뒤, 로복강 하구에 이르면, 루아이 마을에서 특이한 물건을 만난다. 나무칼이다. 코코넛 나무칼로 라푸라푸장군 부대가 스페인의 필리핀 원정대장 마젤란과 전투를 벌여 전사시켰듯이, 철이 부족했던 세부-보홀 사람들에게 나무는 다양한 용도의 생활도구였다.
보홀 운전기사 겸 가이드 엠바누엘 담비스(53)는 “벌목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목재를 썼던 폐철도 침목을 이용해 나무칼을 만들어 실생활에 쓰고 있다”며 “이 마을의 특산물이라서 ‘루아이 블루’라는 지역명이 붙는다”고 말했다.
고기 등 식재료 손질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드는 나무칼은 철제 칼 보다 더 비싸고 안전하다. 항공기에서 도검류 단속을 하니 한국인여행자가 현지 구입해서 귀국하기는 어렵다.
▶초록 물결 8월의 초콜릿힐= 초콜릿힐로 오르는 밀림사이 s자 도로변엔 마호가니 나무, 야자수 등 건강한 숲이 초록빛 힐링을 선사한다. 벌목이 철저히 금지돼 있을 정도로 수목 보호정책이 엄격하다. 우리 일행에 앞서가던 트럭 한 대가 나무를 싣고 가다가 경찰의 신호에 따라 멈춰선다. 엠바누엘 담비스 가이드는 “나무를 싣고 간다는 것은 잘렸다는 뜻이고, 이는 불법 벌목을 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관련자들이 처벌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이들의 학교 책상을 만들때엔 3000ha 넓이에 조성한 마호가니 인공숲의 것을 공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거북이 처럼 생긴 보홀섬의 한복판, 루아이마을에서 54km 북쪽, 카르멘 지역엔 높이 30~50m짜리 고분처럼 생긴 언덕 1268개가 밀집돼 있다.
경주에서 제일 큰 고분, 황남대총 높이가 28m이고, 조선왕릉 높이가 4~7m이니 한국의 왕릉 보다는 훨씬 크다. 제주 오름을 닮기도 했는데, 오름과 비교하면 1/10~1/5 크기다.
200만년전까지만 해도 해수면 아래에 있던 산호초 지형이 융기하면서, 약한 부분은 침식되고 봉분모양으로 형성된 것이다. 해수면 속 하나의 산호 군락지가 한 봉우리이다.
▶건기의 발렌타인데이엔 갈색톤 병치혼합= 산듯하게 정비해 중간 중간 휴게 쉼터까지 둔 214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면, 사방에 유리포장용 뽁뽁이 처럼 언덕들이 펼쳐져 신비감을 자아낸다. 해수면 아래 환초 시절, 8자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 부부합장릉 같은 곳도 보인다.
현지인들은 언덕이라는 뜻의 ‘부드’라고만 불렀다. 우기엔 초록빛을 띠다가 건기엔 산호가루 사이로 물이 모두 빠지며 갈색빛으로 변하기에 서양인들에 의해 초콜릿힐이라고 부르게 됐다. MZ세대 여행자들은 건기에 해당하는 2월 초콜릿빛을 띠는 시기, 발렌타인데이 때 꼭 온다고 한다.
산호가루의 밀도가 촘촘한 일부 힐은 건기에도 초록빛을 유지하기도 한다. 건기인 2월에 갔을 때엔 초록과 갈색의 비율은 5대5 정도였고, 우기인 8월에 방문했더니 온통 초록빛이다.
384개인 제주 오름은 하나하나가 화산이다. 메인 분화구가 분출을 끝낸 뒤 그 주변 마그마가 약한 지반을 뚫고 분출(측화산,기생화산)되어 생성된 것이므로 초콜릿힐과 태생부터 다르다.
한국인들은 ‘보홀고분군’이라고 재미있는 조어를 하지만, 이것이 필리핀 왕실의 능일 리는 없다. 숱한 전설도 나온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거인의 수천방울 눈물이라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갈색오름군, 보홀고분군이라는 한국형 조어 속에는 한국인의 애정도 담겨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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