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지사.
김동연 경기지사.

[헤럴드경제(수원)=박정규 기자]김동연 경기지사에게 부채명세서가 도착했다. 바로 백서다. 그는 이 백서를 신(新) 경세유표 칭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해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이 경세유표다. 이 책은 1표2서(一表二書)라 하여 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 欽欽新書) 함께 정약용 경세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의 하나다. 경세유표는 정치판을 뒤집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원제명은 ‘방례초본(邦禮草本)’이다. 1817년(순조 17)에 저술됐지만 미완성작이다. 유배 중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저술했다.앞머리에 ‘방례초본인 邦禮草本引’을 붙여 저술 의도를 밝히면서 “터럭만큼도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제15책(권42∼44)에는 응시 자격을 제한해 능력 있는 인물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선발 과정을 엄격히 하여 관직 수행에 필요한 자질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서얼 출신이나 서북지방 출신들이 과거시험에 차별을 받지 않게 하고 관직에 들어선 뒤에도 순조롭게 승진할 수 있도록 배려됐다. 요즘처럼 점령군이 능력검증 없이 요직을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서다.

신 경세유표를 공언한 김동연은 요즘 세상을 다 뒤집어 놓을 기세다. 두 권의 자서전 ‘있는자리 흩트리기’(2017년 출간)과 대한민국 금기깨기(2021년 출간) 제목은 강한 인상을 준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하지만 정치상황은 암초와 변수가 너무 많다. 그의 주변에 뛰어난 인재로 편성된 참모진이 필요한 이유다.

김동연의 취임 한달은 정리정돈이 안된 아이들의 교실책상 같았다. 의회 갈등에다 수류탄(술잔)투척까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다. 참을 인(忍)자 세번 썼다. 경기도의회와 맞손을 잡은 후 경기도정은 비로서 안정됐다. 하지만 이제부터다. 김동연 지사의 페이스북에는 백서 소회를 이렇게 기록했다.

“20여 일간 361차례의 회의와 33번의 주민간담회, 34번의 현장방문 등 짧지만 뜨거웠던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활동 결과가 오늘 백서로 나왔습니다. 인수위원들의 목소리는 물론 각계각층 도민들의 바람이 담긴 바이블과도 같습니다”고 했다.

이어 “이 보고서는 제가 도민 여러분께 진 빚을 모은 부채명세서이자 그 빚을 어떻게 갚아나가겠다는 상환계획서와도 같습니다. 도민 여러분들과의 약속인 그 빚을 차근차근 상환해가겠습니다”고 했다.

그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시대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고치기 위해 ‘경세유표’를 쓰셨지만 저는 오늘에 맞는 제도개선과 관행 타파를 실천으로까지 옮기는 ‘新경세유표’를 써보겠습니다”고 밝혔다.

김동연 지사의 정치판은 전 이재명 경기지사때와 다르다. 이재명보다 더 어려운 정치상황이다. 국힘이 대통령이고 경기도의회는 여야동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신 경세유표를 써보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신 경세유표를 성공하면 대권행으로 직진한다. 하지만 가시적 성과도 없이 구호에만 머물면 그는 침몰한다. 김 지사는 유연하고 참신한 이미지가 강점이다. 이재명이 공격형이라면 김동연은 수비형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도지사 시계(時計)는 원래 빠르다. 그는 브랜드를 속도감있게 내놓아야한다. 바이블이 있으면 성적표가 필요하다.

인수위는 모두 391개의 공약과 제안사항을 정리했다. 391개가 성공하면 그는 한국 정치사에 우뚝선다. 실패하면 정치인 묘지로 간다. 김동연의 사즉생(死卽生)은 곧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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