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
지난 21~22일 서울시향 지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정한 강인함’이 무대를 진두지휘했다. 흔들림 없이 명료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선율이 이어졌다. 단호한 손짓으로 매만진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흐트러짐 없이 -- 했다.
지난 21~22일 이틀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김은선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무대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이 무대는 김은선이 무려 1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관객과 만나는 자리였다.
최초, 최연소라는 수사가 붙었다. 이 말들 뒤에 따라붙은 명사는 한계의 극복을 의미했다. ‘최초의 한국인’, ‘최초의 동양인’, ‘최초의 여성’, ‘최연소 지휘자’. 김은선이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이어 북미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오페라단으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임명될 당시 회자된 말들이다. 그 이전 2018년 신시내티 오페라에서 지휘했을 땐 악단의 145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로 이름을 올렸다.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지휘자라는 점에서 그를 향한 국내 음악팬들의 관심 역시 뜨거웠다. 이틀간 들려준 김은선의 무대는 그의 음악적 성향과 지휘 스타일을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공연의 첫 곡은 K-클래식을 세계 무대에 알리고 있는 또 다른 주인공 김택수의 ‘스핀-플립’이었다. 이 곡은 작곡가와 동명이인이기도 한 “탁구선수 김택수를 기리기 위한 작품”이라고 김택수는 설명하곤 한다. 실제 탁구 시합에서 들을 수 있는 리듬이 곳곳에 자리한 음악이다. 김은선에게도 이 곡은 이미 미국의 악단과 이 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요즘 세대의 현대 작곡가들은 설명은 많지만, 막상 연주하면 설명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할 때가 많은데 김택수 작곡가의 작품은 굳이 해설을 읽지 않아도 악보를 보면 무슨 내용을 쓴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곡은 도입부터 청각을 집중시킨다. 익숙한 클래식 곡에선 들을 수 없는 신선한 출발, 뒤어어 물방울이 무수히 터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9분에 달하는 곡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스위스의 첼리스트 크리스티안 폴테라와 협연한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도 인상적이었다. 무반주에 홀로 이어지는 첼로의 D음으로 시작하는 연주는 객석을 숨막히게 옥죄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요란한 금관 소리가 치고 들어오고, 곡은 현란하게 이어진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혼란스러운 곡의 특색, 음악 빛깔을 보여줬다. 폴테라가 선보인 앙코르 곡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 중 ‘사라반드’는 압권이었다. 폴테라 앙코르 곡을 연주할 때 김은선이 무대 한켠에서 음악을 듣는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공연의 메인 디쉬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였다. 이미 드보르자크 교향곡을 다수 연주했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서 첫 오페라로 드보르자크의 ‘루살카’를 지휘한 경험이 있다. 이번 시즌 그가 주력하고 있는 ‘신세계로부터’는 드보르자크가 고국인 체코를 떠나 미국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1893년 1월 쓰기 시작해 그 해 5월 완성된 곡은 시공을 넘어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이어졌다. ‘미국의 이방인’인 김은선이 연주하는 ‘신세계로부터’는 그렇기에 더 특별하게 들렸다.
‘신세계로부터’는 매악장이 킬링 파트다. 마치 후크송을 듣는 것처럼 중독성도 상당하다. 차분한 첼로에서 시작하는 1악장은 ‘신세계 발견’의 경이와 설렘이 경쾌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깔끔한 소리로 이어졌다. 마에스트라의 손길에 따라 정확하게 연주가 흘렀다. 김은선이 바이올린 파트부터 파도를 휩쓸듯 손을 왕복해 움직이면 유려한 현의 연주가 이어졌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의 2악장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다. 마치 한국 가곡이나 동요와 같은 익숙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김은선은 “드보르자크와 체코어,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는데, 파면 팔수록 한국 정서와 비슷한 면이 많아 한국에서 이 작품을 연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악장이었다. 김은선의 손동작에 따라 향수에 취한 현의 선율이 나올 때 살짝 띈 그의 미소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활기찬 3악장이 분위기를 전환한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반복된 선율을 연주하며 흥을 끌어올렸다. ‘신세계로부터’에서 가장 유명한 4악장은 힘차고, 웅장했다. 단원들의 시선이 지휘자를 향하며 시원시원한 소리를 냈다. 감정에 매몰돼 지나치게 질척되지 않았다. 깔끔하고 명료한 마무리는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모든 무대를 마친 뒤 관객들은 엄청난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기승전결이 돋보인 ‘신세계로부터’의 감동을 고스란히 되돌려준 소리였다. 활짝 웃으며 객석과 호흡한 김은선은, 몇 번이나 무대를 다시 나오더니 잠시 먹먹한 감정이 차오르는 듯 가만히 객석을 바라다 봤다. 그리곤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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